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제3한강교

설리숲 2009. 9. 9. 15:42

 

 

 무슨 유럽의 강을 얘기할 때는 그저 낭만적이고 아름답다는 이미지다. 세느 강에서 사랑을 나누고 술을 마시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미라보 다리가 어쩌구 하다 보면 그렇지 않은가. 이것도 일종의 사대주의의 발로이지만 국내의 어느 강이나 다리를 똑같이 얘기해도 유럽의 그것만큼 낭만적이지 않은 것이다.

 기실 그 다리나 그 다리나 실제로 가보면 거기서 거긴 것을.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도 춘천의 강촌보다도 더 별 볼일 없다고들 하니까 말이다.

 

 70년대 대히트를 쳤던 노래 하나 있는데 혜은이의 “제3한강교”다.

 한강대교와 양화대교에 이어서 한강에 세 번째로 놓인 다리로 지금의 한남대교다. 박통의 시퍼런 칼날이 국민을 향해 번뜩이고 있던 시대다. 유신정권은 대중가요 하나도 지나치는 법 없이 일일이 간섭을 했다. 수많은 가수와 가요들이 그 무지막지한 주먹을 맞았고 정권은 나날이 권력의 기치를 높이 들어 올리며 광분했다. 80년대까지 이어진 건전가요들. 노래 테이프를 사면 맨 마지막 곡으론 반드시 건전가요를 넣어야 했다. 그 모양새나 느낌이 꼭 등에 커다란 혹이 붙어 있는 것처럼 든적스럽고 꺼림칙했던 기억들.

 

 그런 와중에 혜은이가 부른 제3한강교.

 최고 스타였던 그녀에게도 정권은 간섭을 했다. 노래가사가 퇴폐적이라고.

 원래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 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갈 곳을 모르는 채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 우리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밤이 새며는 첫차를 타고 이름 모를 거리로 떠나갈 거에요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파란 부분의 내용이 맘에 안 든다는 것이다. 경제를 부흥시키고 선진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온 국민이 총 매진을 해야 하는 이때 저런 퇴폐적인 노래를 부른다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개사해서 다시 부른 게 지금의 이 노래가 되었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 밤이 새며는 첫차를 타고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나갈 거에요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초딩이 들어도 웃을 일이지만 그때는 그게 진리였다. 유신정권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그게 진리였다.

 

               

 

 

 아래의 동영상에도 나타나듯이 음악을 비롯하여 모든 분야에 박통은 세심하게 손을 댔다. 모든 게 다 선진조국을 건설하는 것으로 합리화하면 만사형통이었다. 최전방에서 활약하던 것 중의 하나가 대한뉴스였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짜증스럽게도 봐야했던 정권의 나팔수. 무차별적으로 국민들을 향해 빠빠라밤 정권을 선전하던 대한뉴스였다. 최근 극장에서 또다시 대한뉴스가 상영돼서 논란이 됐었지.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던 날부터 예상했던 일이다. 설마 했다가 정말로 현실화되는 것을 대하고 답답함을 넘어 섬뜩한 공포까지 느껴졌었다.

 

 최근에 혜은이는 새로 출반된 음반에 저 옛 노랫말을 다시 부활시켜 녹음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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