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굿모닝 미스터 오웰

설리숲 2010. 7. 17. 13:49

 

 오래 전 일이었다 1984년.

 새해 첫날 아침을 장식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비디오아트의 거장이라는 백남준의 작품이었다.

  실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그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그날 저녁 아홉시뉴스에 보도되었다. 뭐 그래도 낯설긴 했지만.

 조지 오웰이 쓴 예언적 소설 <1984년>을 모티프로 해서 만든 작품이란다. 그날이 1984년 첫날이었다.

 백남준도 그렇고 조지 오웰 역시 내겐 듣보잡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독서에 일천한 나인지라 별 유명하지도 않은 인물을 부각시키는 게 어째 의아했었다.

 그후 얼마 안 있어 큰맘 먹고 오웰의 소설 <1984>을 손에 잡았다. 아하, 제법 충격이었다. 과연 그런 사회가 존재할까라는 나름의 의문점. 여전히 반공이념이 팽배하던 그 당시 TV는 바로 북한사회가 그런 사회라고 강변하였다.

어느날 아침 정책이 바뀌면 그 이전의 것은 모조리 거짓이 되어 버린다. 조직은 아예 이전의 모든 문서를 조작하거나 없애 버린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작성한다. 내 어릴 적 학교에서는 지겹도록 좌측통행을 강요했었다. 복도를 다닐 때도 왼쪽으로 바짝 붙어 걸었고 ‘사람은 왼쪽길 자동차는 오른쪽길‘이라는 표어가 곳곳에 있었다.  그것이 몸에 배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내 몸은 무조건적으로 왼쪽으로 붙기 일쑤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정반대가 됐다. 우측통행이 맞는다고 강요한다. 오랫동안 진실이었던 게 거짓이 되어 버렸다. 오웰의 소설에서라면 이전의 좌측통행에 대한 기억과 자료를 모조리 말살했을 것이다. 음침한 독방에 가두어 물리적인 고문을 가하여 이전의 기억들을 없애는 것이다. 또한 산더미 같은 옛 문서와 자료를 없애고는 다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창조해나간다. 우리들의 기억과 역사에 좌측통행이란 것은 아예 없는 것이다. 그 곳에서는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모든 자원을 동원해 이전의 그 모든 것들을 말살하느라 한번도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

 

 

 문익점이 역사책에서 사라질 것 같다. 가난하고 척박한 백성들의 의생활을 개선하여 역사의 일대 전환점이 된 목화씨가 그 의미를 잃게 됐다. 백제시대에 이미 면직물이 있었다는 고고학설이 나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존경을 강요당했던 문익점은? 경남 산청에 가면 면화시배지가 있어 문익점을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그것도 폐기되지 않을까.

역사란 그런 것이다.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 늘 꾸준히 고치고 개정하는 게 역사인 것 같다. 60~70년대 쌀보다 보리를 먹어야 건강하다면서 학자들을 시켜 보리의 성분까지 분석하여 국민들에게 홍보했던 역사가 있다. 그리고 이젠 쌀이 좋다고 한다.

모든 것을 뜯어고치려 난리법석을 치는 소설 속의 그 사회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비디오아트가 뭔지도 모르고 백남준과 조지 오웰이 누군지도 모르던 그날, 그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다. 시작하면서 배경음악으로 흐르던 곡. Thompson Twins의 'Hold Me Now'. 밥보다 팝이 좋았던 그 당시 그 노래가 강렬하게 각인되어 지금까지도 기억의 편린 하나로 남아 있는 것이다.

 

 

 Hold Me Now.

 지금 나를 붙잡아 달라고.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 굳게 믿고 사는 내게 세상의 변화는 정체성을 흔들어 혼란스럽고 점점 나는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다.

 나를 잡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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