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다.
슬픔은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
슈베르트가 27세이던1824년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작곡할 당시 그의 일기에 그렇게 썼다.
Sonata for Arpeggione and pianoforte in A minor D.821
곡 제목은 "아르페지오네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지만 어쩔 수 없이 첼로가 연주한다.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2악장 아다지오
3악장 알레그레토
울림이 약하고 감정 표현의 폭이 좁아 버림받은 현악기가 있다. 1823년 빈의 악기제작자 슈타우퍼가 고안한 '아르페지오네'. 10여 년 연주되다 사라졌다. 여섯 줄 기타 모양이지만 연주법은 4줄의 첼로와 비슷해 일명 '기타첼로'로 불렸다. 첼로처럼 세워서 현에 활을 그어 소리를 냈다. 음량은 작지만 연인끼리 소곤소곤 읊조리는 것 같아 '사랑의 기타'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슈베르트(1797~1828)는 이 악기에 연민과 호기심을 느껴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작곡했다. 난방도 불빛도 없는 다락방에서 살던 그가 오랜만에 떠난 여름 휴가 중에 쓴 곡이다. 1824년 5월부터 10월까지 헝가리 에스테르하지 백작의 저택에 머물렀는데 백작의 딸 카롤리네와 사랑에 빠졌다. 가난에 찌든 삶에서 벗어나 모처럼 기분 전환을 하면서 슈베르트의 마음이 활짝 열렸다.
헝가리 자연과 사람들, 여름날 열애의 추억과 미련은 고스란히 음악 속에 담긴다. 그해 11월 빈으로 돌아와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완성했다. 사랑을 접어야 하는 슬픔과 눈물, 후회와 연민, 고독을 버무려 만든 곡이다. 감정이 끓어 오르지만 기품은 넘친다.
자취를 감춘 아르페지오네 대신 첼로로 연주되는 이 작품의 1악장 '알레그로(allegroㆍ빠르게)'는 서정과 애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아주 유명한 선율이다. 넋두리를 꺼내는 듯한 피아노 전주 후 첼로가 노래한다. 조금 가라앉아 있던 선율은 금세 밝고 명랑하게 바뀐다. 이별을 아쉬워하다가도 사랑의 기억 때문에 미소짓는 것 같다.
2악장 '아다지오'(adagioㆍ느리게)는 우울하다. 애수와 동경을 품은 듯한 주제를 깊숙이 연주한다. 당시 슈베르트가 "나는 밤마다 잠자리에 들 때 이제 다시는 깨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전날의 슬픈 생각이 되살아나곤 한다"고 쓴 일기 내용이 얼핏 연상되는 대목이다.
3악장 '알레그레토'(allegrettoㆍ조금 빠르게)에서는 다시 경쾌해진다. 헝가리풍 첼로의 피치카토(현을 손가락으로 퉁겨 연주하는 기법)가 한층 강조된 후 자유분방하고 해학적인 선율이 흘러나온다. 음악에 모든 감정의 찌꺼기를 쏟아낸 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모양이다.
피아노가 없어 기타로 작곡했던 가난한 음악가 슈베르트는 아르페지오네처럼 31세에 단명했다. 영양 부족과 심한 두통에 시달리다가 대표작 '겨울 나그네'(1827)를 남기고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아르페지오네의 존재는 완전히 잊혔지만 그의 음악은 180년 넘게 연주되고 있다. 비록 불빛 없는 다락방에서 쓰여졌지만 그의 작품들은 세상을 밝히는 생명력을 얻은 셈이다.
아내도 가정도 없이 독신으로 살았던 슈베르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베토벤의 무덤 가까이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