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설리숲 2008. 12. 7. 10:26

 

 우리말을 사랑하지만 간혹 영단어가 좋을 때가 있다.

 가령 '플라워' 같은...

 우리말 '꽃'은 정말 맘에 안든다. 그 아름다운 대상물에 거친 경음을 쓴 것도 그렇고 한 음절로 짧게

끝나는 것도 그렇다. 그 뿐 아니라 짧은 음절에 'ㅊ'이라는 받침이 있어 뒤에 남아야 할 여운을 무질러 버린다.

 예쁜 그것에 왜 그런 험악한(?) 이름을 붙였는지 모른다. 반면에 영단어 플라워는 참말 듣기 좋은 말이다. 발음도 부드럽고 풍기는 이미지도 그것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 한 것 같다.

 

 또 다른 영단어는 '심플'이다. 간단하다, 단순하다는 우리말보다는 그 simple이주는 어감이 훨 좋다.

 

 마로니에(marronnier)는 불단어다.

 여지껏 마로니에의 우리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냥 첨부터 지금까지 마로니에로만 알고 있다. 불어답게 발음도 부드럽고 그 이미지는 더욱 강렬하다. 젊음 고뇌 낭만 허무 철학 문학 절규 술과 사랑 이런 것들이 모두 그 안에 있다. 보통 대학캠퍼스에 심어져 있는 것도 그 느낌을 더욱 간절하게 한다.

 

 마로니에의 우리 이름은 칠엽수다.

 잎이 일곱 장이다.

 칠엽수라 하면 참 멋대가리 없고 무미건조하다.

 나는 우리말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사람이지만 마로니에는 버리지 않을 테다. 칠엽수는 정말 아니다.

 

 부안 읍내의 가로수가 마로니에다.

 첨 왔을 때 제법 무성하게 잎을 달고 청청하더니 오늘 모진 바람이 불고 매서운 날에,

 버티지 못하고 시들기도 하고 떨어져 날리기도 하여 세월의 허무를 새삼 느끼게 한다.

 

 각 고장이 제각각 특유의 가로수를 심는 게 보기 좋다. 천편일률적인 획일이 아닌 자유분방한 발상이 좋다. 언젠가는 각지의 가로수를 순례하는 여행을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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