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어느 누군가와의 관계가 홀연히 끊어지는 일이 있다. 아니다 있는 게 아니라 삶이란 그것의 연속이다.
끊어진다고 해서 서운하거나 안타까울 것은 없다. 대신 또다른 이들과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고 이어지고 그 중의 누구는 또 많은 시간 후엔 끊어질 테고.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해 왔어도 현재 내가 교류하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는다.
지난 주 춘천으로 가는 버스에서 지갑을 잃어 버렸다. 나로선 난생 처음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경우를 많이 보아 왔기에 그리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설마 누가 돌려주지는 않을 게다. 돈이야 꺼내서 요긴하게 쓰고 지갑은 돌려줄 수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바랄 수는 없다. 아예 다 포기하는 게 맘 편하지.
머리 속에선 주민증이니 면허증이니 이런 거 재발급에다, 현금카드 등 분실신고 따위의 생각들이 움직인다.
여행에서 돌아온 즉시 여기저기 다니며 그 생각들을 실행에 옮기고 다 마무리 되어가는 중에 문득 아하,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 많은 정보들과 재산들을 담고 있던 바로 그것. 지갑!
다른 것들이야 다시 재발급 받으면 되지만 지갑만은 영원히 잃고 마는 것이다.
그제야 그 지갑이 10년도 훨씬 전에 누군가에게 선물받았다는 것과 이제는 그와의 인연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간 왜 그를 한번도 기억하지 않았을까.
10년도 더 넘게 그의 지갑과 함께 살아 왔으면서 어떻게 그를 잊고 있었을까.
이제 완전히 인연이 끝나서야 그를 떠올리는 건 뭔가.
이렇게 관계란 슬그머니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는 게지. 어느날 문득 돌아보면 그간의 나날이 텅 빈 공간같이 느껴진다. 잊어 버린 사람들과의 나날들이 아무 부질없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결국은 이렇게 혼자 남게 될 터인데.
지금 교류하는 이들도 먼훗날이면 또 그렇게 잊혀지고 나는 혼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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