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숲에서

선녀와 나무꾼 외전

설리숲 2008. 12. 6. 20:26

 

 노총각 나무꾼이 선녀에게 장가를 들었다는 소문은 전 산골에 퍼졌다. 이에 나무꾼들은 너도나도 숲속을 뒤져 사슴을 찾아다니느라 혈안이 되었는데,
 개중에 운 좋은 놈 두엇은 성공하여 늦장가를 가기도 했으나 그것도 더 이상 쉽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사슴들은 귀찮아서 도저히 배겨날 수 없었다. 죄다 외출을 자제하고 들어앉아 조용하게 겨울을 나기로 했다. 그러니 아무리 숲을 헤집고 다녀도 사슴은 코빼기도 구경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개중에는 멍청한 사슴도 더러 있는지라 사슴 하나가 멋모르고 나댕기다가 재수 없게 눈이 벌건 나무꾼 하나와 맞닥뜨렸다. 나무꾼은 다짜고짜 사슴의 모가지를 틀어쥐고 욱대겼다. 선녀 내놔!
 선녀가 어딨는지 내가 어트게 알간. 사슴은 기가 막히고 황당했지만 나무꾼의 당조짐에 무가내하 당하고만 섰다가 결국 나무꾼과 함께 선녀를 찾아 먼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산 넘고 물 건너, 날이 가고 달이 가고, 둘은 몸이 지칠 대로 지쳤지만 선녀는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춥기도 하고 나무꾼은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그따위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가장 참기 힘든 건 그거였다. 여자 생각에 아랫도리가 불편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거였다.
 어느 물가에서, 엎드려 물을 마시는 사슴의 궁뎅이를 보다가 그는 희색이 만면했다. 옳거니! 보니 놈이 분명 암놈이렸다!! 아싸~~
 앞뒤 잴 것 없이 그대로 사슴 궁뎅이다가 밀어붙였다. 그랬더니 사슴년이 뒷발로 나무꾼을 냅다 걷어찼다. 멀리 곤두박질쳐진 나무꾼 불같이 화가 났다.
 “저 시발년이 꼴에 여자라고 튕겨!”
 다시 한 번 아랫도리를 까고 달려들었지만 사슴의 힘센 뒷발에 여지없이 나가떨어졌다. 그 후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시도했지만 도도한 사슴은 한 번도 허락하질 않았다.

 모든 걸 포기하고 길을 가던 며칠 후 어느 폭포를 지나다가 야호, 드디어 선녀를 발견했다. 감격적인 유후~
 그러나 기쁨도 순간, 선녀는 누워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아무리 아랫도리가 궁해도 도저히 아픈 여자를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 나무꾼은 온 정성을 다해서 선녀를 치료하고 병구완했다. 그 덕분인지 며칠 후 선녀는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이 되어 가뿐하게 일어났다.
 나무꾼은 좋아 죽었다. 바로 오늘이 그날이다. 밤이 오기를 기다려 나무꾼은 슬그머니 선녀에게로 다가가서는 느끼하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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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녀님,
 저 사슴년 뒷다리 좀 잡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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