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숲에서

땔감에 대하여

설리숲 2008. 1. 19. 02:33

 

 

“맨 지천인 게 나무니 난방비 안 들어서 좋겠다.”

 

 보통 이런 말들을 하기 일쑤다. 뭐 주위가 온통 나무숲이니 노동만 하면 난방은 문제없지. 문제는 그 노동력이란 게 만만치 않다는 것.

 2~3일 회사 출근하면 한 달 치 기름 값은 번다. 그러나 숲속의 나무로 한 달 치 땔감을 만들려면 사나흘로 어림없다. 대략 일주일 정도 잡는데 기실 그것도 어렵다. 왜냐하면 하루 종일 해야 그만큼이지 힘이 부쳐서 하루 종일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난방비 안 든다 편한 소리는 하지 말지어다.

 

 스무골에 들어오던 그 해 봄에 산림청에서 숲 간벌을 했다. 덕분에 여기저기 베어 넘긴 나무들이 널려서 몇 해는 잘 썼다. 가까운 데 것을 다 써 버리고 나니 이젠 주워다 쓰기엔 너무 멀리 있다. 또 여러 해가 지나니 그거 주워와 보았자 땔감으로선 마땅치가 않다.

 할 수 없이 가까운 숲에서 내가 직접 나무를 베어 넘겨야 한다. 하지만 산속의 나무를 함부로 베어서는 안 된다. 우선 산림훼손이니까. 게다가 법으로도 금지되어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 법은 있지만 그건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내가 나무를 베는 것을 지키고 감시할 리도 없거니와 설사 그렇더라도 아마 눈감아 줄 테니까. 만약 못하게 하면 저들이 기름을 대 줄 것도 아니잖아.

 문제는 산림훼손인데 이곳 산의 나무를 쓰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니 한 해 겨울 때야 얼마나 되겠나. 울창한 숲의 몇 그루 나무 벤다고 훼손까지 말할 건 못 된다. 숲도 적당하게 성근 게 좋지 나무가 너무 밀생하는 것은 오히려 나쁘다. 그러니 내가 톱을 대는 것도 아무케나 베어 넘기는 게 아니다. 간격을 보아 너무 배다 싶은 것만 골라 벌목을 한다. 나도 일종의 ‘숲 가꾸기’를 하는 셈이다.

 

 

 

 겨울에 때려면 충분히 말라야 하니까 벌목은 여름에 미리 해야 한다. 져다 나르는 건 가을에 한다. 지게에 실을 수 있는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마당에다 쌓아 놓는다. 가으내 부지런히 실어 내린다. 월동준비다. 눈이 내리기 전에 다 끝내야 한다.

 장작을 만들려면 이걸 또다시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이것 역시 중노동이다. 금새 옷이 흥건히 젖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작패기. 이건 보기보다 힘이 덜 든다. 첨에는 어렵더니 어느 정도 숙련이 되면 이건 참 재미있는 작업이다. 허공을 가르며 도끼를 내려찍고 쩍 소리와 함께 장작이 두 쪽이 날 때의 그 쾌감은 정말 상쾌하다.

 물론 힘이 필요하지만 힘보다는 기술이다. 볼링을 할 때 그저 힘을 실어 던지면 핀이 다 쓰러질 것 같지만 아니다. 힘이 약해 데굴데굴 굴러가더라도 코스만 정확하게 들어가면 스트라이크가 나는 것이다. 장작도 그렇다. 정확하게 목표물에 날을 찍는 게 포인트다. 거기에 힘만 가미할 수 있으면 전문가라 할 수 있다. 난 이미 그러고 여러 겨울을 났으니 스스로 전문가라 칭한다. 
 올해는 통영에 가느라고 가을에 충분히 져다 나르지 못했다. 아무래도 눈속을 헤매면서 더 날라야 할 것 같다.

 이러다 점점 더 몸에 근육이 붙으면 어떡하지. 그렇잖아도 몸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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