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가을 은비령

설리숲 2024. 11. 29. 12:10

 

은비령(隱秘嶺).

은밀하게 세상으로부터 숨어 있는 고개.

 

원래는 없는 고개였다. 소설 속에 설정된 가공의 무대다.

작가 이순원이 은비령으로 설정한 곳은 필례령이다. 소설의 성공으로 사람들은 이제 그 고개를 은비령이라 한다.

한계령 바로 밑에 있다.

 

왠지 겨울이어야 어울릴 것 같은 곳. 은비령.

소설에서는 봄인데 폭설이 내렸고 지금은 가을이다.

 

 

소설로 인해 지도에도 은비령이 등재됐고 이제는 숨은 고개가 아닌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원래는 필례령이었다.

이곳의 필례약수가 유명하였지만 지금은 약수는 폐쇄되었다.

대신 가을이면 단풍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언제던가 백설 만건곤하던 겨울날, 비에 흠뻑 젖어 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예년 같으면 잎이 이미 다 질 시기지만 올해는 아직도 단풍이 덜 들었다.

불타는 듯한 정열의 단풍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조금은 실망하는 기색들이다.

여기뿐 아니다. 어딜 가도 예전의 그 황홀하던 단풍색은 올해는 없다.

올해뿐 아니라 앞으로는 다시 없을 것이다.

 

 

 

나뭇잎은 여전히 푸르지만 날은 오싹하게 추웠다.

산골은 벌써 긴 겨울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한 차례 눈도 내렸다.

 

 

 

 

솔베이그의 노래를 듣는다.

 

소설 <은비령>에는 아일랜드 가수인 엔야(Enya}가 곳곳에 등장한다.

엔야의 노래들은 아일랜드 특유의 신비로운 정서가 있다. 작가는 이 은비령의 신비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엔야와 그 노래들을 소재로 쓴 것 같다.

 

오래 전(1999)에 드라마로 방영되었었다. 그때 이순원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보통의 연출자라면 이 소설을 드라마화하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엔야의 노래들을 백그라운드로 깔거나 주 테마음악으로 썼을 것이다.

그런데 연출자는 감각이 달랐는지 그리그의 <솔베이그의 노래>를 테마음악으로 흘렸다.

그때 들은 이 노래가 어찌나 감성을 건드렸는지 드라마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 나고 겨울 골짜기의 영상과 함께 노래만 가슴에 남았다.

 

 

 

 

 

      그리그 : 솔베이그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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