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청도 운문사

설리숲 2024. 11. 29. 12:03

 

사찰이라면 으레 비탈진 산길을 올라 닿는 외진 것이다.

속세와 더 멀리 떨어져 있길 바라서 깎아지른 절벽 위에 되똑 올라앉은 작은 암자들은 물론이고,

때론 수종사처럼 큰 가람도 허위허위 땀 흘리며 올라가야 만나는 것이다.

 

청도의 운문사는 조금의 경사 없이 평지로 걸어 들어가 부처를 만나는 몇 안되는 절이다.

내가 아는 한 아예 속세로 나와 마을 가운데 앉은 실상사와

대도시 빌딩 숲속에 비집고 들어앉은 조계사,

봉선사 신륵사 등등.

그리고 여기 운문사 정도다.

 

사찰 순례를 하고는 있지만 나는 불자도 아니고 그저 어중이떠중이 관광객일 뿐이다.

당우 건물이나 담장을 넘겨다보며 뭐 볼만한 게 있나 하고 눈요깃거리나 찾는 호기심 외엔 별다른 의미는 없다.

그런 점에서 운문사는 관광하기 좋은 절이다.

 

 

산문에서부터 소나무 숲의 빼어난 경관에 감탄한다.

그렇게 멋진 소나무 숲은 표충사와 어금지금하리라.

 

 

운문사는 규모가 상당히 크다.

대구 동화사의 말사지만 본사보다도 더 넓고 크다.

승가대학을 운영 중이고 당우 전각과 수많은 문화재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디테일하게 볼거리가 많다.

더구나 대웅전이 둘이나 되는 국내 유일의 특별함도 있다.

비구니 도량이라 일부만 개방했는데도 한나절 놀고 가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가을이라 경내 초목들이 연출해 주는 가을정경도 좋다.

 

 

나는 가을의 산사가 좋다.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아 벅적거리는데도 전혀 소란스럽지 않고 아늑하게 침잠해 있는,

여기는 가을의 운문사다.

 

 

 

 

 

      낙엽 그리고 바람

 

   길위에 구르는 낙엽을 보며

   우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수치를 읽는다

   날마다 바람으로 계시되는

   생명을 보면

   송두리째 기대어

   보고 들은 이야기를

   느껴 아는 이야기를

   푸념으로도 좋고

   자랑으로도 좋은 이야기를

   마냥 하고 싶어진다.

 

   누가 바람을 찾았고

   누가 바람을 만났소

 

   죽어 가는 고뇌의 현실을

   잉태되는 생명의 숨결을

   길 위에 굴러가는 낙엽을 보며

 

   우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깊이를 읽는다.

 

 

 

 

 

 

          모차르트 교향곡 14번

 

'서늘한 숲 > 햇빛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투어 서울] 쌍문동  (0) 2024.11.29
가을 은비령  (0) 2024.11.29
양평 사나사  (1) 2024.10.06
연보랏빛 가을꽃, 봉천사 개미취 피다  (1) 2024.10.06
오근장 메타세쿼이아와 정북동토성  (0) 2024.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