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되었다.
괴산생활을 청산하고 충주로 옮겼다. 가까운 이웃 동네지만 환경은 천지 차이다. 깡시골에서 도심 한가운데로의 이동이다. 이렇게 또 한번 터닝포인트가 된다.
새로 개통한 중부내륙선 철도는 그간은 부발과 충주 구간만 운행했는데 12월 28일부터 노선을 연장해 충주에서 판교까지 운행이 시작되었다. 충주시민으로 등록이 되니 이 정보를 DM으로 보내 주었다.
그 첫 열차를 타 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예매를 했다. 주말 아니면 엄두를 못 냈던 것을 이제 ‘백수’라는 직업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해 준다.
출근시간이다.
이곳의 정식명칭은 ‘판교테크노밸리’다. 판교과학기술계곡? 굳이 영어로 이름 짓는 걸 비판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IT와 BT산업의 집산지다. 관련기업들은 물론 굴지의 대기업들이 들어와 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굴뚝없는 공장이라는 미래4차산업이다.
그런 특성상 출근하는 사람들은 거개가 20~30대 젊은 사람들이다.
바쁘게 걸어가는 그들을 백수인 내가 여유롭게 구경한다. 저들은 좋은 직장 다닌다고 자족하면서 이른 새벽에 부지런을 떨어 출근길에 나왔을 것이다. 9시까지 일터에 들어가 저녁까지 일을 해야 하는 쳇바퀴 일상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도 안 부럽고 오히려 동정이 간다면 진정한 백수다.
어디를 가든 다 똑같은 풍경이다. 직장인이 다 건물로 들어가고 나서 한산한 거리는 더욱더 삭막하다.
항공기 운항의 안전상 이곳의 건물은 높이가 제한돼 있다. 봇들공원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판교의 스카이라인은 그래서 다이나믹하지 않고 밋밋하다.
하루종일 미세먼지로 부연 도시의 스카이라인이다.
점심때가 되자 아침의 그 사람들이 다시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닭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직장인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보이는 도시의 전형적인 하루.
아침 점심, 그리고 이따가 저녁에 보게 될 퇴근전쟁.
백수여서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테크노밸리는 그날 하루 아무 일도 없이 그저 조용하게 하루를 보냈다. 건물 안의 사람들의 생활이야 알 수 없지만 거리 풍경은 너무나 무료하고 조용했다. SF영화에서는 이런 도시에 UFO 따위의 외계물도 나타나고 어느 곳에서는 지구를 지배하려는 일당들의 활동도 있더구만 적어도 그날 하루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그렇게 무료한 날들의 연속일 것이다. 직장인들이 오지 않는 주말은 어떨까가 궁금했다. 유령의 도시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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