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공포가 가장 극심하게 확장될 무렵 자택근무에 돌입한 회사들이 있었다. 극히 일부다.
현실적으로 그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다. 직업에 엄연한 귀천이 있어 출근 안하고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귀한 직업군의 사람들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일터에 나가야 하는 일이다.
매일의 러시아워에 버스나 지하철이 여전히 콩나물시루처럼 바글바글하다.
그래도 출퇴근길에서 확진되었다는 사례는 없었다. 그 공은 전적으로 마스크에 있다고 확신한다. 결국 코로나도 그리 두려워할 것까지는 아니란 생각을 한다.
이 위대한 마스크.
시대상을 반영할 유적중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 인류는 평생을 마스크를 부착한 채 살게 될지도 모른다. 맨몸에 옷을 걸치게 되고 그게 수천년동안 인간의 자연스러운 방식이 되었듯 마스크도 그런 존재가 되어 일종의 의상패션의 하나로 자리잡는 걸 예상해 본다. 관습적으로 양말과 신발을 신 듯이.
의상디자이너들은 좀더 세련되고 우아한 마스크를 생산해내고 그 패션쇼도 할 것이다. 취향에 맞는 장갑이나 손수건 고르듯이 우리는 좀더 멋지고 예쁜 마스크 착용하는 센스를 추구할 것이다.
다분히 상상이지만 지금 상황으로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공포다. 아니 공포라기보다는 ‘일상’이 되겠다.
분명 그 현상이 눈앞에 있다. 전국의 산이나 강, 길에 온통 마스크다. 먹고 버린 빈 음료수캔이나 물 PET병 등이 곳곳에 버려져 있는 것 마냥 근래 이 마스크가 보는 곳마다 버려져 있다. 시대가 낳은 우울한 현상이다.
그보다는 저급한 시민의식이 더 우울하다. 몰지각한 무개념들. 나뭇가지에도 걸어놓고 가고. 공원 벤치 틈에도 쑤셔 넣고 가고.
어느 누가 삼천리 금수강산에 마스크 쓰레기가 넘쳐날 거라는 상상이나 했을까.
아 불우한 우리 시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