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병산서원의 배롱나무

설리숲 2019. 8. 12. 20:30

 

배롱나무를 성인이 되고도 오랜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나 태어난 강원도를 포함 중부지방엔 이 나무가 없었다. 어른이 돼서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다가 이 정열의 꽃잎을 가진 나무를 만났다. 그토록 지천인 것을, 그녀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고, 어쩌면 알지 못한 채 죽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서울 도심에도 제법 흔하다.

지자체마다 벚나무 심는 게 유행이더니 이제 차츰 이 배롱나무가 주종이 되는 것 같다. 벚꽃은 너무도 빨리 사라져 버리지만 백일홍이라 하는가, 온 여름 내내 붉게 타오르는 이 정열의 꽃송이들.

 

병산서원에도 목하 붉은 백일홍 잔치다. 안동으로 가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어쩜! 병산서원의 배롱나무를 소개하고 있지 않은가. 몹시 궁금하고 보고팠다. 긴 휴가의 다섯 번째 날.

백일홍은 색이 다양하다. 빨강에서부터 진보라 연보라 분홍 하양까지 있다. 그러나 모름지기 백일홍은 빨강이라야 한다.

 

가을의 낙엽이 비창하지만 그 보다 봄날의 낙화가 더 비창하다. 그러나 그보다도 여름의 새빨간 백일홍 꽃잎은 더욱 처연하고 비감하다. 선연함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슬픔이련가. 목울대를 건드리는 서러움이 있다.

 

병산서원 안팎으로 숱하게 백일홍이 피었다. 이곳은 화려하기보다는 고풍스런 건물과 어우러져 소담하고 청초한 느낌이 있다.

 

누구는 정원에 심고 싶은 두 번째 나무라는데 언제부턴가 난 이 나무에 꽂혀 있다.

 

 

 

 

 

 

 

 

 

 

 

 

 

 

 

 

 

 

 

 

 

 

 

 

 

 

 

 

 

 

 

 

 

 

                         민해경 -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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