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한국의 아름다운 길

보은 오리숲길

설리숲 2019. 7. 9. 00:05


인터넷 서핑하다가 속리산캠핑장을 보고는 그렇군, 이제 여름이니 캠핑을 다녀야겠다, 하다가 아! 탄식이 나왔다. 무심하게 여름을 맞고 어영부영하다 보니 이미 여름이 반이 지나 있는 것이다. 언제 이렇게 계절이 지났누. 메뚜기 한철, 캠핑할 수 있는 날들을 헛되이 까먹어 버렸다.

 

캠핑도 캠핑이려니와 이곳 법주사 들어가는 길이 아름다운 명품길이어서 성하의 숲길을 걷고 싶었다. 집에서도 한 시간 남짓 가까운 거리라 언제든 마음 내키면 갈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법주사에서 문장대로 가는 중간 쯤에 세심정이 잇다. 전엔 등산로였는데 근래 길 열풍의 세풍을 따라 새로 길을 만들고 정비하여 <세조길>을 개통했다. 세조가 행차했다는 의미겠다. 유명한 정이품송이 법주사 들머리에 있고 세심정 아래 세조가 목욕하여 피부병을 고쳤다는 목욕소가 있다.

 

뭐니뭐니해도 일주문까지의 오리숲길이 가장 근사하다. 보통 유명한 절의 산문이 그러하다. 월정사 해인사 내장사 통도사 내소사 등이 그렇다. 어쩌면 그 길 때문에 사찰이 유명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법주사 또한 빼어난 명품길을 자랑한다. 오리슾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요즘처럼 녹음이 짙은 한여름의 길 풍광은 속리(俗離), 말 그대로 속세를 단절한 기분이다.

라디오에서는 하루 종일 서울의 폭염이야기로 채웠다. 속리산으로 다가가면서 냉기가 느껴지는 듯하더니 숲으로 들자 과연 딴 세상이다. 골바람이 불며 서늘하게 온몸을 식혔다.

 

야영장에 어둠이 내리자 한기가 으스스하다. 바람막이 카디건을 준비하길 잘했다. 텐트 밖으론 밤새도록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새벽 즈음에는 등골까지 냉기가 서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혹시 몰라 준비해 간 겨울용 침낭도 그렇게 요긴하게 쓰였다. 포근하게 아침을 맞는다.

이렇게 첫 캠핑여행을 때늦게 시작한다.



















세조가 목욕을 하고 나서 피부병이 나았다는 소.

내 생각엔 말이지. 저 물에 목욕해서라기보다는 이곳까지 걸어왔으니 건강해진 건 아닐까 해. 더구나 신선한 공기와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의 효과까지 더해졌다면 그럴듯하지 않나. 








계곡에서 청아한 오카리나소리가 들려 보니 한 아주머니 솜씨다. 역시 숲과 자연의 악기다.





비행기에서 낯선 사막 한가운데로 떨어진 것이 우리 인생의 시작이다.

눈부시게 빛나는 나뭇잎을 쳐다보다가 문득 우리 삶의 본질을 생각했다. 척박하게 버려진 채로 시작했지만, 고달프고 외롭지만 우리는 어쨌든 살고 있지 않은가. 내 의지가 아니고 강제로 살아지는 것이더라도 그래도 살고 있으니 그것 자체로 경이롭다. 그렇지 않으면 저 눈부신 햇살과 나뭇잎을 알지 못할 터.






숲길에 동화된 내 뒷모습도 마음에 든다.




소지로 :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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