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초록의 茶園에서

관리보살

설리숲 2019. 7. 1. 23:42

 

전에 한동안 관리집사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람을 고용해서 일은 부려먹으면서 월급은 제대로 안주는 교회 이야기다. ‘집사라는 허울 좋은 감투를 주고는 온갖 허드렛일을 다 시킨다. 월급은 안 주고, 혹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들먹인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을 명받은 성도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축복입니까. ‘집사는 감히 하나님을 거역하지 못하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죽어라고 일만 한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교회의 악랄한 폭력이다.

 

교회만이 아니다.

올 봄, 다원에 스님 하나가 다녀갔다. 다원 주인하고는 어지간한 친분도 있고 차를 사가는 고객이기도 하다. 주지하듯 해마다 다원의 찻잎 따는 인력이 줄어 간다. 이번에 그 고충을 듣고 가더니 그 다음다음 날 다원에 몇 몇의 여자들이 도착했다. 천안에서도 오고, 포항에서도 오고, 전국을 망라했다. 아무개 스님의 연락을 받고 찻잎 따러 왔다고. 그 시간에 대서 왔다면 각자의 집에서 한밤중에 떠났을 것이다.

저런! 일각의 시차도 없이 나는 교회의 관리집사를 떠올렸다. 불가에서는 보통의 청신녀들을 보살이라 하고 청신사들을 처사라고 부른다. 일반 우바이 우바새들에게도 그리 높여 준다. 보살이라니 무엄하지만 부르는 사람도 불리는 사람도 듣기 좋으니 그저 예전부터 일반화가 돼 있는 것이다.

 

인기 있는 스님에게는 따르는 보살들이 많다. 어디 먼데로 나들이를 가더라도 스님 혼자인 경우는 없고 언제나 동행하는 보살 한둘은 있다. 나는 그 꼬락서니가 영 꼴사납다. 자가용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여자 보살들을 대동하고 다니는 것 보면 에라이 중놈 하고 속으로 욕해 준다. 중도 중이려니와 그를 따라다니는 여자들이 더 한심하다. 저마다 가족과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 절과 스님들에게 그리 시간을 할애한다는 게 곱게 보이지 않는다. 뭐 불륜이라도 저지르는 것은 아닐 테지만(가끔은 짜장 그런 사례들도 접하긴 한다) 마치 영적으로 고차원적인 신앙심을 누리며 사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살이라 추어주는 게 교회서 집사라고 추어주는 것과 다르다고 할 수 있나. 이번에 그 스님도 분명 자기를 따르는 보살들에게 산청의 모 차밭에 일손이 달리더라. 하루 가서 울력해주지 않으련? 명령 아닌 명령을 내렸을 것이고 그녀들은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스님의 명령이 영광스러워서 아주 기꺼이 그러마고 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이른 꼭두새벽 불원천리 달려왔을 테지. 출근할 남편과 아이들 밥은 당연히 안했을 테고. 관리집사, 이건 관리보살?

인간의 나약한 곳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의 정신을 지배하는 종교다. 사마귀 몸에 들어가 기생하는 연가시 생각이 났다.




'서늘한 숲 > 초록의 茶園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주차(茶)문화전시회  (0) 2019.10.25
넉넉한 그늘  (0) 2019.07.03
2017 봄. 두류음악회 불꽃축제  (0) 2019.02.07
시간이 없다고?  (0) 2018.06.20
아름다운 일탈  (0) 2018.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