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진주엘 가다.
여행은 한번쯤 쉬고 토요일 아침을 늘어지게 자고 싶었다. 설핏 눈을 떴을 때 사위가 환하니 이미 아침이 왔음을 알겠다. 늦잠을 자고 말리라. 다시 눈을 감고 개잠이 들었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잠이 포화상태라 더 이상은 잘 것 같지 않아 누운 채로 시계를 본다. 아홉 시다. 코가 비뚤어지게 잔다는 게 정오에도 한참 못 미쳤다. 일어나 세수를 하고 쌀을 안친다. 닭고기를 튀긴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이어서 커피를 마신다. 이번 주말은 빈둥거리고 말리라. 도서관에 올라가 월간 <객석>을 보고 선학산 오솔길을 산책한다. 탑마트엘 다녀오고 주유소에 가 등유를 한 통 사온다. 그랬는데도 겨우 오후 두 시. 미용실에 가서 1년 묵은 머리를 자른다. 시간 좀 허비하려는 생각이었는데 미용사 아주머니는 어찌 그리 기술이 좋은지 5분만에, 머리 감기고 물기 터는 것까지 10분도 안돼서 끝내 버린다. 어쨌든 덕분에 내 신수가 훤해 보인다. 집앞으로 돌아와 커피점을 들어간다. 괴산으로 오기 며칠 전에 새로 생긴 집이다. 날마다 들러 단골집을 만들리라 했었는데 괴산으로 오게 돼서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 뒤에는 도서관, 앞에는 커피점을 둔 이런 환경은 천혜의 특권이다. 인테리어가 제법 고상하고 조명도 은은하니 좋다. 별로 목이 좋지 않아 보였는데 의외로 드나드는 손님들이 많다. 대부분 30대 이상의 성인들이다.
혼커피. 혼밥 혼술이 요즘 트렌드다. 토요일 오후 커피점에 앉아 혼자 커피를 마시는 것도 생경하지 않은 풍경이어서 좋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고민하다 혼자 결정하는 혼자의 생활이 말할 수 없이 안락하다. 혼자 빈둥거리는 이런 게으름도 혼자라서 누리는 호사다.
오래도록 앉아 시간을 죽이며 커피를 홀짝거렸건만 3시가 넘질 않았다. 뭔 하루가 이리 길다냐. 아무 것도 안하는 것도 그리 쉬운 것도 아님을 새삼.
언제나 함께 했지 고독은 마치 친구처럼 습관인듯 고독은 그림자처럼 친숙하게 따라다녔지.
난 외톨이가 아냐
왜냐하면
고독이 나와 함께 있으니까
조르쥬 무스타키 : 나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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