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모텔에 관한 한 보고서

설리숲 2017. 12. 12. 00:17

 

  죄송합니다. 객실이 다 찼습니다.

 

  겨울이라 해가 짧아 일찍 어두워졌지만 시간은 아직 여섯 시가 안 됐다. 모텔에 들어가 숙박을 하려 하니 방이 없단다. 이 시간에?

  네 알았다고 돌아서 나오긴 했지만 기분은 더럽다. 방이 없긴 뭐가 없어, 대실 손님만 받겠다는 심보지. 토요일이다. 여관 모텔들의 대목날이다.

  하긴 혼자 들어서는 나를 보는 눈길부터가 반가움이 아닌 뻘쭘한 느낌을 주었다. 혼자 오는 사람은 그 짓을 하러 오는 게 아니니 옹긋 하룻밤을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하루 저녁에 적어도 대실 손님 네 팀은 받을 테니 그 수입이 얼마냐.

  서울 등 대도시에서 주말이나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은 모텔에 들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 모텔과 여관은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여관旅館. 나그네가 묵는 집이다. 즉 여행자가 자는 곳이다. 그런데 그 이미지가 변색하여 추저분한 곳이 되었다. 학교나 주택가 근처에는 허가나 나지 않는 법조항이 있을 정도니 과연 좋지 않은 곳이긴 한가 보다.

  여인숙이 있었다. 숙박도 하고 저녁과 아침 식사도 제공했다. 지금의 모텔처럼 번듯한 건물이 아니고 외관은 여염집이다. 다만 숙박을 하기 위해 방을 여러 개 만든 집이었다. 70년대 하숙집 같은 풍경이었을 게다. 이런 여인숙에서 일말의 추저분한 뉘앙스가 있단 말인가.

  내가 섬진강에 갔을 때 들었던 여인숙은 숙박료가 3천원이었다. 여관은 그보다 비쌌다. 아무런 편의시설 없이 잠만 자고 일어나 떠나는 곳이 여인숙이었다. 돈 아끼려는 여행자들이 선호하던 숙박시설이었다. 요즘의 게스트하우스는 그에 비하면 상당히 비싼 편이다.

  세태가 변함에 따라 숙박업소는 점점 고급화되고 싸구려 여인숙은 거의 사라졌다.

  요즘 여인숙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여인숙이라는 간판을 붙인 곳은 십중팔구 여자가 있는 곳이다. 즉 사창가다. 대표적인 곳이 옛 강릉역 앞의 골목이다. 간판이 죄다 여인숙이다.

  말이 된다. 旅人宿이 아닌 女人宿이 되었다.

 

  다시 대실 이야기로 돌아가서.

  예전에 위와 같은 일을 처음 겪었을 때 참말로 순진했는지라 곧이곧대로 믿었는데 어느 때 역시 방이 다 찼다고 거절당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뒤로 들어온 젊은 남녀는 무사통과되는 걸 알고 몹시도 분하고 괘씸했던 기억이 있다. 잠시 후 그 모텔에 전화를 걸어 방이 있느냐 묻고 쉬어가시려느냐 저쪽에서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방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까는 방이 다 찼다면서요 했더니 뭐 뻔히 알면서 그러느냐고 별 이상한 사람 다보겠다는 조롱조의 말투로 전화를 끊었다. 뻔히 알긴 뭘 알아. 이제 처음 알았구만. 이 썩을 여관바리놈들.

 

  여관과 모텔은 혼자 드는 곳이 아니다. 둘이 그것도 남녀가 드는 곳이다. 숱하게 겪어 온 일이기도 하지만 혼자 모텔에 들어가면 주인으로부터 특이한 사람을 대하는듯한 주인의 시선을 받곤 한다. 어떤 사람은 아예 대놓고 농을 건넨다. 아 왜 혼자 여관엘 오세요 애인이랑 같이 다니셔야지. 빌어먹을! 남이야 혼자 다니든 떼거지로 다니든 잠만 자면 그만이지 무신놈의 오지랖이냔 말이지.

  그러하니 객실엘 들어가면 침대에 나란히 베개 두 개가 놓여있다. 모든 시스템이 두 사람이라는 것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 숱하게도 모텔을 드나들었다. 그 돈을 고스란히 모아 두었다면...

  아마 논문을 쓰라 해도 막힘없이 장황하게 쓸 수 있을 만큼 모텔은 내 생활의 일부다.

 

 

  모텔 객실에 있는 것들.

  우선 결제를 하면 방 열쇠와 함께 칫솔을 준다. 나 같은 경우는 혼자이니 칫솔 한 개. 면도기를 주는 곳도 있고 안 주는 곳도 있고. 허름해서 저렴한 모텔은 그렇고 약간 비싼 모텔은 파우치를 준다. 파우치에는 칫솔, 일회용면도기, 머리끈, 세정제, , 그리고 콘돔 등이 들어 있다. 카운터에서 주기도 하지만 객실 안에 비치해 놓기도 한다. 콘돔이 왜 필요하며 젤은 어떻고 질세정제까지. 이것만 봐도 모텔은 남녀 섹스하러 들어가는 곳이란 게 확실하다. 어느 모텔은 복도에 자판기가 있는데 딜도 등 보기에도 민망한 여성용 자위기구를 판다. 아 글쎄 자위하러 모텔엘 들어가는 여성들도 있다는 거냐.

  기본적으로 TV가 있고, 그것과 방안의 등과 에어콘을 조정하기 위한 복합 리모콘이 있다. 허름한 여관은 에어콘마저 없어 선풍기가 놓여 있다. 테이블과 침대 옆에 티슈가 하나씩 있고 저마다의 크기로 거울이 있고 스킨과 밀크로숀이 하나씩. 드라이기가 있고 헤어스프레이가 있고 빗이 있다.

  작은 냉장고가 있고 그 안엔 생수나 음료수캔이 있다. 냉장고 안의 음료수는 업소마다 다양하다. 허름한 곳은 알쭌히 생수만 두 병 있는 곳도 있다. 그런데 어떤 곳은 밀봉된 생수가 아닌 이미 개봉된 PET병에 물을 태워 넣어둔 곳도 있어 이 물은 께름칙해서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컵과 함께 믹스커피와 티백녹차가 있는 곳도 있다. 고급 모텔은 정수기가 비치돼 있어 따로 생수를 넣어두지 않는다. 정수기 없는 곳은 전기포트가 있는데 이마저도 없어 복도에 나가 보면 거기에 정수기가 비치돼 있기도 하다.

  여름 같은 때는 에프킬라 따위의 분사살충제가 있다. 때로는 와이파이가 있기도 하고 스마트폰 충전기도 있다. 컴퓨터가 있어 인터넷을 쓰기도 하는데 나는 이런 모텔을 좋아한다.

  인근의 음식점이나 다방광고물이 인쇄된 성냥갑이 있다. 여관이 티켓다방의 주요 시장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예전엔 남자 손님이 들면 주인이 으레 여자를 불러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들어가면서 미리 여자 필요 없다고 말을 해 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난데없이 아가씨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황당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고.

  때로는 전화기도 있다. 이것도 휴대폰이 없던 예전 이야기로 시외전화용 0번을 못쓰게 조작해 놓았었다. 내실로 연락하려면 9번을 누르라는 안내문도 있었다.

  또 한가지, 예전에는 숙박계를 작성했다. 주소와 이름을 기명하는 것인데 여관에서 살인 등 강력범죄나 자살 등의 사건이 종종 일어났기에 투숙객의 신상을 요구하기 위한 법적 장치였다. 그렇지만 유명무실한 제도로 곧이곧대로 적어 넣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됐을까. 여관에서도 당국의 지시니 따를 뿐 숙박계의 내용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역시 실제 주소와 이름을 적은 적이 한번도 없다. 내 가상의 주소와 이름을 만들어 사용했다. 그때 내 이름은 김윤발이었다.

 

  벽에는 완강기가 걸려 있고 옷걸이가 있다. 고급 모텔엔 취침용 가운이 두 벌 걸려 있는데 과연 그 옷을 입는 사람도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다음은 욕실 겸 화장실.

  화장실의 품격은 천차만별이어서 좁은 곳 넓은 곳 화려한 곳 천박한 곳, 욕조가 없는 곳 있는 곳, 때로는 월풀도 있고... 모텔 수준의 가늠자가 될 만하다.

  비누와 치약이 있고, 샴푸와 린스와 바디로숀이 있다. 고급 모텔은 변기에도 띠를 둘러놓아 금방 산 상품을 개봉하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고급 모텔은 난방이 잘 돼 있어 한겨울 한파에도 따뜻하지만 저렴한 곳은 그렇지 않아 한기를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침대 밑에 전자담요를 깔아 그것으로만 난방을 하는 구두쇠 여관도 있다.

 

 

  여관의 보통의 풍경은 대체로 이와 같다. 좀 특이한 기억으론 영월의 한 모텔에 있던 라디오였다. 전혀 생각지도 못할 뜬금없는 그것. 틀어 보니 소리가 났다. 모텔에 웬 라디오람. 특이한 주인의 취향이로고. 하긴 TV가 있는데 라디오가 있다고 신기할 건 없다.

 

  이처럼 모텔은 혼자 자는 곳이 아니라 남녀가 섹스하는 곳이다. 유추해보면 대실은 분명 불륜의 장소다. 합법적인(?) 부부가 잠을 자면 잤지 섹스를 하기 위해 2시간 대실을 쓰지는 않을 테고. 결국은 부적절한 관계의 남녀들이 이용하는 것일 테다. 불륜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으나 미혼의 연인들도 실은 합법적인 것은 아니기에.

  이런 이유 때문에 모텔과 여관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것에 부끄럼 없이 당당할 수 있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모텔에서 잤다는 것을 감추려 한다. 여행을 갔으면 당연히 어디선가는 잠을 잤을 테고, 그 지역에 지인이 있어 그 집에서 자지 않은 바에야 호텔(호텔은 비싸니), 모텔 여관에서 잤을 게 뻔하고 당연하거늘. 그것이 부끄러울 일이 아닌데도 감춰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씁쓸하다.

 

  모텔에서 자 본적이 없다면서 그것을 마치 한번도 남자와 교제하지 않은 깨끗한 것으로 생각하고 새침을 떼는 여성이 있었다. 데이트를 하고 밤에 모텔을 찾았다. 그녀가 그런다. “아까 보니까 대실 2만원이라 써 있는 모텔이 있던데 우리 거기 가자. 큰방이 2만원이면 엄청 싸잖아.” 나는 순진한 여자라는 존재를 숫제 믿지 않는 사람이라 술 한잔도 못먹는다는 둥, 야동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둥 하는 여자애들을 보면 속으로 놀고 있네한다. 야한 음담패설을 들으면 빵 터지기 마련인 부분에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정색하는 여자를 보면 재수가 없어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 큰방이 2만원이니 싸다고 그녀가 구라를 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하던지.

  무더운 여름에 모텔을 갔었는데 에어컨을 키려고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리모컨을 찾았다. 화장실에 있던 그녀가 벽 쪽에 찾아봐 벽에 붙어있을 거야한다. 모텔에 한 번도 안 가본 여자가 잘 아네. ,

  아침에 나서려고 단장을 하던 그녀가 파우치에서 머리끈 좀 꺼내줘한다. 나도 모르고 있는 모텔 파우치의 내용물을 그렇게 잘 알면서! 에라이 여시 같은 X들아.

 

 

  목하 평창올림픽을 등에 업고 인근 숙박업소들의 무분별한 바가지 행태가 연일 뉴스화되고 있다. 어떤 날은 그들이 자성하여 가격을 내렸다는 뉴스도 나온다. 그런데 그 내렸다는 가격도 평소보다 몇 배나 비싸다. 에구 몰염치한 사람들!

나는 모텔 마니아여서 앞으로도 쭉 모텔을 애용할 것이고 고로 모텔은 내내 내 생활의 일부가 되겠지만 이런 사람들 때문에 모텔이 아닌 모든 모텔주들은 정이 안간다. 그러니 당신들은 평생 여관바리나 해먹고 사는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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