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쑤쿤, 붉은 장미

설리숲 2016. 8. 28. 01:23

 

 입때껏 미혼으로 있는 내게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심각하게 걱정을 해주며 진심어린 조언도 해주었다. 전에 베트남에 살았었고 근래에도 개인사로 종종 중국을 비롯해 동남아에 다녀오곤 하는 사람인데, 자기가 겪어본 바로는 캄보디아 사람이 가장 선하고 온화하다고. 더구나 여자는 싹싹하고 착해서 신붓감으로 최고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니 나더러 눈 딱 감고 한 2년만 캄보디아서 살며 아가씨 하나를 사귀어 놓으라고 그런다. 네 그래 볼까요? 하고 웃고 말았는데.

 

 올여름 어느 농장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는데 거기에 캄보디아 아가씨가 있었다. 캄보디아 사람은 처음 접했다. 나이가 30대 중반이라니 좀 특이하다. 내가 알기론 그쪽 사람들은 조혼을 해서 보통 스무 살 남짓이면 결혼을 한다는데 그 나이까지 미혼이라니.

 쑤쿤은 일도 잘 하고 그것보단 우선 마음씨가 곱고 배려와 봉사심이 많아 어딜 가든 사랑 받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캄보디아 사람이 진국이라는 어떤 사람의 말이 생각났다. 과연 그런가. 내가 만난 유일한 캄보디아인이니 다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 나라에 대한 인상은 엄청 좋은 것이다.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 내가 동안인데다가 나이 차를 감안하면 그리 동떨어진 호칭은 아니래도 어째 낯간지럽다. 이 나이에...

 그러더니 어느 날 내 이름을 묻는다. 나는 진중하지 못하게 장난쳤다. 원빈, 내 이름은 원빈이라고. 나는 만약 호를 갖는다면 원빈으로 하고 싶다. 물론 호를 가질 일은 없지만. 또 불가로 출가를 한다면 법명은 역시 원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왠지 어감도 좋고 이미지도 좋아 보이는 이름이어서. 얼마나 아름다운 얼굴이냐.

 그래서 장난으로 그리 대답한 건데 쑤쿤은 웃지 않고 진정으로 받아들인다. 캄보디아에도 한류가 열풍인 걸로 아는데 그 잘 생긴 원빈을 모르는 모양이다. 실없는 농담을 했는데 장난으로 받아지질 않으니 진심없이 응대한 자신이 머쓱해지고 또 미안하기도 했다.

진짜 내 이름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어느 날 훌쩍 떠나오고 말았다.

 

 아무튼 그 아가씨는 이모저모 참 매력 있는 아가씨인데 반전이 있었다.

 산책하다가 길가 풀숲에 있던 꿩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푸드득 날아올랐다. 그러나 녀석은 워낙 다급했는지 날아오르다 밭가로 둘러친 그물 개바자에 발이 걸리고 말았다. 쑤쿤은 마침 낫을 들고 있었는데 비호같이 달려들어 낫으로 내리쳤다. 그녀도 급하긴 마찬가지여서 얼떨결에 내려치다는 게 낫의 등이 아닌 날로 찍은 것이다. 맞았는지 어쨌는지 꿩은 죽는다고 소리를 쳐대고 짧은 생사의 투쟁 끝에 꿩을 손으로 잡는데 성공했다. 나는 멀찌감치 서서, 하지마~ 놔줘~ 소리만 질러댔다. 그러나 가여운 꿩은 무자비한 아가씨에게 잡히고 말았다. 잡고 보니 목 뒤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낫으로 제대로 찍었던 것 같다. 쑤쿤은 룰루랄라 의기양 집으로 돌아와 뜨거운 물 없이 생으로 털을 뽑고 각을 떠 능숙하게 처리를 했다.

 여리하고 얄쌍하게만 보였던 아가씨에게서 소름 끼치는(적어도 내게는) 다른 면을 보았다.

 

 그리고 또 어느 날은 벌집을 하나 따 가지고 왔다. 벌집에는 노란 애벌레가 가득 들어 있었다. 애벌레 하나를 건네주면서 먹으라고 한다. 나는 기겁해서 뒤로 물러났다. 맛있어요 하면서 꼬물거리는 애벌레를 제 입에 넣더니 우물우물 씹는다. 나는 또 기겁해서 멀찌감치 도망가고 말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도 벌레를 권했는데 다들 뒷걸음을 치니 그 모양이 이해되지 않는 시늉을 보인다. 그러더니 장난기가 발동해 부러 애벌레로 사람을 놀렸다. 싫다고 도망가는 꼴을 보며 혼자 킥킥댄다.

 

 문화 차이니까 내게는 소름 끼치는 짓도 실은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도 메뚜기니 누에번데기니 다들 먹지 않는가. 그러므로 다른 면을 보았다고 해도 그녀의 매력이 감해진다거나 하진 않았다.

 

 

 

 한국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남성들의 국제결혼에 아주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랑이 아니고 돈으로 여자를, 그것도 나이 차가 많은 젊은 여자를 사오는 반인권적인 행태라고 비난을 하곤 한다. 팔려오는 여자들 당사자의 생에도 치욕이요, 해당국 입장에서도 굴욕이라는 것이다. 흡사 인신매매와 다르지 않은 짓을 합법적으로 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번 돌아보자. 결혼은 해야겠는데 여의치가 않다. 능력이 모자라 시집오겠다는 여자가 없다. 농사꾼은 싫다고 여자들이 내댄다. 나이는 먹어가고 총각으로 늙을 게 뻔하다. 이런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좋지 않을까. 누굴 막론하고 사람 각자는 최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남의 인생이라고 심상하게 여기면 안 된다. 나는 싫어서 거부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먼 이국까지 가서 장가를 들어야 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상황을 비난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들도 결혼하고 싶고 그럴 권리가 있다.

 

 소위 3D업종에서 일하기 싫어 기피하면서도 일자리가 없다, 취직하기 힘들다는 한국 사람들. 그 빈자리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있다. 그들 아니면 이 나라 경제는 어떻겠는가. 일손은 많이 필요한데 힘든 일이라고 사람들은 다들 기피하니.

 이런 외노자들에게 감사해야 하거늘 오히려 비난하며 허물을 씌운다. 저것들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없다고.

 우리가 저들에게 보내는 시선과 행패를 보면, 한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면서 외국으로 한참들 나갔을 때 그때 그 나라 사람들이 동양의 노린내 나는 사람들에게 보냈을 멸시와 천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남의 눈에 가시는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모지 못한다는.

 전쟁을 겪고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 사생아들의 불행한 삶이 남겨졌는가. 그랬음에도 우리는 베트남에 똑같은 불행한 삶을 뿌리고 왔다.

 

 다문화는 이제 거부한다고 막아지는 게 아니다. 시류다. 돼먹지 못한 질시와 근거 없는 증오는 천박하고 비겁하다.

 

 

흐르는 곡은 <빨간 장미>라는 노래로 캄보디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노래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동백아가씨> 같은 위상의 노래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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