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수험생은 벼슬이야

설리숲 2014. 11. 12. 22:11

 

 교문에서 소리소리 질러대며 교가를 부르고 응원가를 부르고 수험생 하나 지날 때마다 함성소리.

 수능 때마다 보는 정경들.

 저리 목청껏 응원가를 불러댄다고 지식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없이 조용하다고 지식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늘 생각하는 건데 좀 유난스럽다는 생각.

 

 한데서 오들오들 떨어가며 기도를 올리는 엄마들. 도대체 뭘 기원하는 걸까. 아무래 그래봤자 공부 열심히 한 놈은 점수 높게 나올 거고, 그렇지 않은 놈은 떨어질 거고. 다 부질없고 의미 없는 행태들이다. 기도한다고 뺀질뺀질 놀던 놈이 성적이 좋으면 다른 아이는요.

 

 수능일이라고 경찰이 비상대기하고 공무원과 회사원들 출근시간도 늦추고.

 이건 뭐 수험생이 큰 벼슬이다.

 중대한 시험을 치르는 놈이 지각한대서야 말이 되나. 오히려 다른 날보다 일찍 부지런을 떨어야지. 도저히 안 되면 전날 그 근처에 미리 가서 1박을 하든가. ‘대학수학능력시험’ 아닌가. 시험 보는 날마저 지각하는 놈은 대학을 수학할 능력과 자격이 안 되는 놈이니 더 볼 것도 없다.

 

 나 대입학력고사 수험생일 때 우리 엄마 아무 것도 안 했고 시험 보는 날 늦잠 안 자고 그냥 평소처럼 일어나 여느 날과 똑같은 반찬에 밥 먹고, 학교 등교하듯이 무상하게 집을 나섰다. 아무도 시험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 한마디 해 주지 않았다. 그냥 여러 일상 중의 하루였다. 그래도 시험은 잘 봤고 내가 예상했던 대로 점수 나왔고 뭐 특별하지도 않았다.

 

 참 극성스럽고 유난스러운 대한민국의 한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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