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숲에서

연가시

설리숲 2013. 8. 7. 20:25

 

 누가 애호박을 주기에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며칠 후에 호박국을 끓이려고 꺼내 썰다가 기겁했다. 단면마다 구더기들이 꼬물거리고 있었다. 칼에 잘려 반 토막 난 놈들도 있었다. 곤충 따위는 괜찮은데 구더기나 지렁이 나비애벌레 등 꿈틀거리는 벌레들은 영 질색인 터라 얼마나 기함했는지 비명까지 내뱉었다.

 며칠 지났다고 호박이 상했나. 상태로 봐서는 구더기가 날 정도로 상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상식을 알게 됐다. 호박이 오래 돼서 구더기가 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꽃이 피고 수정할 즈음 어떤 경로로 파리의 알이 호박꽃에 침투를 하게 되고 그 놈들이 꽃을 거쳐 열매가 되기까지 내내 그 호박에서 성장한다고 한다. 구더기도 기생충인 셈이다.

 어떤 생명도 악의적으로 남을 해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들의 본능과 속성대로 행동할 뿐이다. 그러니 미워하거나 해코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렇지만 남의 몸에 기생해서 사는 생명들에 대해서는 측은지심이 없다. 내게 가장 혐오스런 사람은 기생충 같은 사람이다.

 

 

 아주 무서운 놈이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악랄하고 소름끼치는 놈이다. 연가시다. 물속에서 사는 이놈은 가까운 풀에다 알을 낳고 메뚜기나 여치 등 초식곤충들이 풀을 먹다가 연가시 알도 같이 먹게 된다. 그 알을 먹는 순간 곤충의 인생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 연가시 알은 곤충의 뱃속에 안착하여 성장하기 시작한다. 보통 육식곤충인 사마귀 등이 초식곤충을 잡아먹기 마련인데 이때 연가시는 다시 사마귀의 몸으로 옮아간다. 이게 일반적인 경로이고 끝까지 잡아먹히지 않은 초식곤충의 경우 연가시는 계속해서 그 곤충의 몸에서 성장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보통의 기생충과 같다. 내가 소름끼치게 무서워하는 건 이 다음부터다. 곤충의 뱃속에서 성장한 연가시는 때가 됐음을 알고 곤충을 물가로 유인한다. 숙주의 뇌를 조정하는 무서운 능력자인 것이다. 더 무서운 건 연가시의 조종을 받고 있으면서도 곤충은 그것을 알지 못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날 홀연히 물가로 가서는 물로 뛰어든다. 그리고 생을 마감한다. 그때 비로소 연가시가 빠져 나오는데 그 길이가 긴 것은 1m나 된다고 하니 놈이 가득 차 있던 곤충의 몸은 빈 껍질 뿐이다.

 일반 상식으로는 연가시가 숙주의 몸에 기생하면서 내장을 갉아먹는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그러면 숙주가 죽어 버리므로 영악하고 악랄한 연가시 놈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 곤충이 연명할 최소한의 조건은 유지시킨다고 한다. 정말 공포스러운 놈이다.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지만 연가시에 빗댈 인간상은 없는 것 같다. 어찌 남의 뇌를 조종하는 능력이 가능할까. 사기꾼들이야 입에 발린 말로 사람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재주가 있지만 당하는 사람의 의지에 의한 것이다.

 나는 ‘기생충 같은 놈’보다 경멸스러운 욕으로 ‘연가시 같은 놈’을 최상위에 두기로 했다.

 

 

 

 

 

 여름이다.

 오늘은 입추다.

 꼭 반년 전 혹은 반년 후 입춘 때는 추워도 어느 정도 한겨울에서 벗어나 조금은 봄의 희망을 느끼며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봄 속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입추는 전혀 가을의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다. 한 해중 가장 무덥고 고통스러운 때가 입추인 것이다.

 아무려나 그래 봤자 한 달이다. 이 한 달동안 정열적인 축제를 불사른다. 난 언제부턴가 여름이 좋다. 열정적이고 화려한 계절이다.

 나무그늘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올려다보는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 그리고 건듯 부는 시원한 바람이 내가 생각하는 여름의 상징이다. 다른 어느 철에 이처럼 풀섶에 누워 있겠는가. 아 여름은 참으로 맹렬하고 아름답구나. 이 여름이 다 소멸되기 전에 내 청춘도 다 불사르고 싶다.

 

 

 

 

 

 

         말로 : 9월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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