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널다가 지네 한 마리가 툭 떨어져 기겁했다. 평시 세탁기 뚜껑을 늘 열어 놓는 습관이어서 지네가 기어다니다 빠졌을 테고 그걸 모르고 세탁기를 돌렸던 게다.
그 이튿날이던가 아님 그 다음다음 날인지도 가늠이 안 되는 날, 가을 모기가 어찌나 기승을 부려대는지 홈키퍼를 뿌려 참혹한 대살륙의 축제(?)를 한바탕 벌였는데 그 와중에 어느 틈바구니에 있었는지 아주 가는 새끼 지네가 한 마리 꿈틀대며 고통스러워하다 죽었다.
고의는 아니더라도 (엄밀하게는 미필적고의라고 해서 이것도 죄가 되긴 하지만 어쨌든) 내게 해코지를 전혀 한 적 없는 지네의 소중한 목숨을 앗은 셈이다.
그리고 그 이튿날이던가 아님 그 다음다음 날인지 역시 가늠이 안 되는 날, 자다가 비명을 지르며 한밤중에 공중 일어났다. 언놈인가 팔꿈치 뒤쪽을 깨물었는데 제법 아팠다. 생각할 것도 없이 지네가 깨물고 도망갔다는 걸 직감했다. 얼마나 아프던지 이내 개잠에 들지 못 하고 누워서 나름의 설정과 각본을 짜기를. 필시 세탁기에서 죽은 지네와 홈키퍼에 죽은 새끼 지네와 방금 저를 깨물고 간 지네는 한 가족일 거라고. 남편 혹은 아내가 억울하게 죽은 가족의 원수를 갚으려는 복수심이었다고.
그러면서 치악산에 얽혀 전해오는 <은혜 갚은 까치>의 전설을 떠올렸다. 한데 나는 그 전에 누구에게도 은혜를 베푼 적이 없어서 지네의 공격을 막아 줄 존재가 없었던 거지. 아팠지만 그래도 원한 맺힌 지네가 그나마 앙갚음을 할 수 있었으니 조금은 짐이 덜어졌다고 혼자 위안을 삼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프지도 않고 상처도 전혀 없었다.
설화나 전설 따위를 보면 외모가 못난 생물들은 늘 악역이다. 이야기 속에서만이 아니고 못생긴 존재들을 향한 우리의 마인드는 언제나 부정적이다. 나는 늘 뱀이 마음에 걸린다. 갸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그저 흉칙한 외모로 인해 온갖 악담과 저주 미움 등을 다 짊어지고 있다. 역시 지네도 설화에서는 맹독을 뿜는 괴물로 등장하지.
그깟 외모야 사람 시선으로 본 것 뿐 그닥 의미는 없어 보이는데. 만약 지네 등 다른 생물 종족의 입장에서 사람을 본다면 정말 흉하고 혐오스런 동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게다가 인간들이 하는 짓거리란 능히 저주의 대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어 보인다.
어쩌면 그들의 눈에는 원빈이 잘 생겼고, 반대로 나는 되게 못 생긴 동물로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는 미학과는 정반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