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멋모르고 그저 호기심으로 찾아왔다가 만난 인연.
찻잎 따다가 덖고 말리고 포장하는 공정은 너무나 간단하고 맨송맨송했다.
별것도 아닌 게 값만 비싸다는 생각을 했다.
그 별것도 아닌 간단한 것이 시간을 더하고 해가 쌓이면서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제사 그가 함유한 맛을 조금씩 알아 가는 중이다. 아 그래도 그 내면의 깊은 뜻은 어림도 없어 보인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됐으니 생판 무지렁이가 용 됐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날은 푹푹 찌는데도 뜨거운 차가 입에 당기는 것은 참으로 희한한 노릇이다, 뜨거운 국물을 먹으면서 시원하다 거짓부렁을 해대는 어른들이었는데 나도 이젠 어엿한 어른이 됐을까.
아주 가끔 생각하기를 내 좀더 젊은 나이에 차를 알았더라면 차를 대하는 마인드를 좀 더 깊이 가졌을 텐데. 어쩌면 더 구체적으로 깊이 공부를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엔 산을 닮은 사내가 말없이 차를 덖고 있었다. 해가 가면서 점점 권샘 외모가 그 글의 표현대로 변하여 가는 것 같다. 이젠 기력도 많이 쇠해지신 게 표가 난다. 어느 날 저녁 지리산 능선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보며 "지는 해는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아. 이젠 내가 지는 해가 됐네" 쓸쓸한 표정으로 탄식하시더니. 그런 거지. 제행무상 인생무상이라니까. 초연하자. 어차피 시간이야 흘러가니 아등바등 조급해 해봐야 득 되는 것도 없을 테다.
봄날 반천으로 들어갈 때의 기분은 늘 설렌다. 올 시즌은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어떤 재밌는 에피소드가 생길까.
늘 얘깃거리를 만들어 주던 딱새가 올해는 번잡한 곳을 피해 곶감막에다 둥지를 틀었다. 덕분에 새끼가 부화하고 둥지에서 나와 비행연습을 할 때도 사람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내 카메라만 한번 눈길을 주었다.
모든 것은 그저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둬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강은 원래 흐르던대로 놔둬야지 인공적으로 삽질을 하면 필시 재앙이 온다. 물리적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부작용이 생긴다. 진심이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감정이다. 진심이 있으니까.
지난 사진들을 보며 일장춘몽 같은 꿈을 꾼다. 이렇게 한해 한해 쌓이면서 사람은 나이를 먹고 꿈을 꾸는 건가 보다.
굴곡 없는 평탄한 나날들로만 점철되어 그 어느 날 뜻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불쑥 만나더라도 환한 웃음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으면 좋겠다.
라벨 : 소나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