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때문에 생활이 자유롭지 못하다. 어디 외출했다가도 반드시 돌아와야 되고 시간 맞춰 밥을 줘야 하고... 개를 구속하려 목줄을 묶어 놓으니 오히려 내가 구속당한다. 그래서 나는 짐승을 두지 않는다.
예전에 토종닭 농장에서 잠시 일을 한 적이 있다. 하루에 두 번 사료를 주고 역시 두 번 알을 걷는다. 닭 주인의 생활은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요일이라고 닭도 일요일은 아니며 추석 명절이라고 닭들도 명절은 아니다. 차례도 지내러 못 간다. 가엾은 중생이다. 어차피 잘 먹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게 목적이거늘 그것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모양새가 되고 만다.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라면 잘릴 때 잘리더라도 그냥 며칠 놀아도 되겠고만 그놈의 닭 때문에 속박의 생을 보내고 있으니.
여행 동행자 중에 고급 배낭을 멘 사람이 있었다. 그레고리라는데 물정 어두운 나는 첨 들어보는 브랜드지만 제법 고가인 듯하다. 그래선가. 배낭에 어찌나 신경을 쓰는지 안쓰러울 정도다. 밥 먹으러 식당엘 들어가도 절대 땅바닥에 놓지 않고 빈 의자를 찾아 올려놓는다. 길섶에 앉아 쉴 때도 땅에 닿을까 가슴에 껴안고 앉아 있고 하늘에 잔뜩 구름이 이니 벌써 커버를 꺼내 씌운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려다 기사가 배낭은 짐칸에 넣고 타라 하는 바람에 잠깐 실랑이가 오고가다 윽박지르는 기사에 못 이겨 옆구리 짐칸에 넣긴 했는데 서울로 가는 내내 배낭 생각에 얼마나 애타고 불안해했을지 내가 더 안타까웠다.
고급 배낭을 소유하고 있을 때 그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렇지만 오히려 그것에 속박당하여 늘 울가망하니 비례해서 더 불행하지는 않은가. 나는 2만 원짜리 배낭이라서 마음이 자유로운가.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럴 일도 없지만 고가의 배낭을 소유한다 해도 그것에 구속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봐야 배낭이 배낭이지 그거 메고 다닌다고 더 가벼운 것도 아닐 테고. 기껏해야 남이 봐줄 때 느끼는 우쭐함 내지는 허영심 아니겠나.
그래서 나는 가난한 게 좋다. 가난해서 행복하다는 건 절대 거짓말이다. 돈 없이 궁색하게 사는 게 행복할 리가 있나. 그렇지만 불행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적어도 브랜드 따위 쓸데없는 것들 때문에 구속되고 스트레스 쌓을 일은 없기에 그래서 다행이라는 말이다.
가난의 변명이 아니라 나는 완전하게 자유롭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