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섶다리가 있었다

설리숲 2012. 3. 25. 01:55

 

 시어 고부라진 짠지에 물말이로 볼가심한 아버지가 섶다리를 건너 어둠이 가시지 않은 개울을 건너 장엘 나갔다. 애녀석들은 하루 종일 섶다리에 나가 아버지를 기다렸다.

 군인 간 아들이 뚝바리가 되어 절름거리며 돌아온 곳도 섶다리였고, 먼뎃 사람한테 시집을 가는 큰애기가 울음을 삼키며 꽃신을 신고 건너간 곳도 섶다리였다. 엄마는 이제는 못 만나리라 사립문 옆 호두나무 둥치를 부여잡고 섧게섧게 울었다. 자신도 그 옛날 저 다리를 건너 가난한 무지렁이 농군에게 시집을 왔다.

 시집간 딸내미가 그리움을 담뿍 담아 부친 편지를 가지고 우체부가 건너오는 곳도 섶다리였다. 자전거와 함께 다리 밑으로 굴러 떨어져 혼이 난 후론 줄곧 자전거를 끌고 걸어서 마을로 들어왔다.

 

 

 

 

 유장하게 흐르는 물처럼 세월도 그렇게 흐르면서 청춘들은 백발이 되고 또 그 다음 청춘들이 백발이 되고 그 세월만큼 섶다리도 끊임없이 생멸했다. 

 남한강 물줄기는 한양을 드나드는 교통로였다. 강원도 충청도 일대의 통나무들이 뗏목을 타고 광나루로 몰려갔고 한양에서는 소금이나 젓갈 등 산골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자들이 거슬러 올라왔다.

 그래서 강마을들의 섶다리는 사시장철 있는 게 아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뗏목들이 다녀야 했으므로 갈수기가 시작되면 비로소 개울에 섶다리를 놓았다. 놓았다 허물고 놓았다 허물기를 반복하며 사람들은 머리에 세월을 얹었다. 섶다리는 강마을 사람들의 희노애락이었다.

 

 지금이야 웬만한 데는 육중한 대교들이 다 있고 아주 궁벽진 동네에도 시멘트 다리가 놓이지 않은 곳이 없다. 다들 차 한 대씩은 가지고 있으니 섶다리나 징검다리 따위는 진작 사라졌다.

사라졌지만 이제는 옛 정취와 추억을 되살린다고 관광지 같은 데에 더러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곤 한다.

 사람 마음은 간사한 것이다. 그것이 삶에 긴요할 때면 불편하고 촌스럽고 어서 개명한 세상을 보기를 바라지만 정작 그것들이 필요하지 않게 되면 추억이니 문화유산이니 하며 다시 붙잡아 오려고 한다.

 자동차를 만들어 신나게 타고 다니더니 요즘은 걷는 게 좋다고 너나없이 난리들이다. 지지리도 가난하여 쌀이 귀할 때에 그렇게도 먹기 싫던 보리밥을 요즘은 또 특별식으로 비싸게 사 먹는다. 쌀보다 보리가 비싸고 콩도 그렇다. 제기랄이다!!

 

 

 

 

 

 1박2일 팀이 정선을 다녀갔다.

 아우라지의 저 섶다리에서 출연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걸 방송에서 보았다. 이제는 뗏목이 다닐 일이 없으니 섶다리는 헐리지 않을 것이다. 적당한 때에 새로 나무를 베어다가 리모델링이야 하겠지만.

 

 사라지는 그 모든 것들은 왜 사라진 뒤에야 참됨을 알게 되는가. 사람들은 아마도 아쉬움과 그리움을 즐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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