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때의 일이다.
첫날 민박집은 구엄리와 애월 사이 어느 바닷가였다. 발코니 너머 잔잔한 푸른 물과 비바리가 자맥질하는 정경이 보였다. 넓고 전망 좋고 시설 좋고, 값도 비싸지 않은 괜찮은 집이었다. 왠지 모르게 아늑하거나 편안한 느낌은 없었지만 여행의 설렘과 적당한 고단함은 제주도의 밤처럼 푸르고 아련했다.
하룻밤을 잘 잤다. 한데 동행은 그렇지 않았다 한다. 밤새 가위에 시달렸다 한다. 누군가가 목을 누르고 아무리 소리를 지르려 해도 목 밖으로 나오지 않고, 몸부림만 치다가 기진맥진했다 한다. 밤새 계속되는 악몽, 또다시 목을 조이는 가위, 얼굴도 보였다 한다.
잠결에 사뭇 신음소리가 나더라니 그랬구나. 난 그저 여행 첫날의 여독 때문이려니 했지 귀신(?)과의 놀이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해 그냥 내처 잠에 들고 말았다. 아침에 동행의 그 얘기를 듣고는 아~ 그랬었구나 깨단하면서 신음소리를 무시하고 단잠을 즐긴 내가 몹시 미안했다.
"보니까 이 집 터가 좀 센 거 같네"
미안해서 한마디 한다는 게 이거였는데, 사실 내가 뭐 그런 쪽으로 아는 건 없다. 다만 안날에 민박집을 들어설 때의 느낌을 무덤덤하게 얘기해 준 것 뿐이었다. 동행은 정색하며 믿는 눈치였다.
그날부터 동행은 민박집을 정할 때마다 내게 자문을 구했다. 이 집은 터가 어떠냐 느낌이 어떠냐.
사실 나 개뿔 아는 게 없었지만 불안해하는 동행을 안심시켜야겠기에 그럴싸하게 한번 휘둘러보는 척 하고는 '이 집 괜찮다 염려 마라 오늘 편안하게 깊은 잠 자겠다' 이렇게 말해 주곤 했다. 나를 굳게 믿는 동행에게 나 또한 그런 믿음을 줘야 했다. 회복가능성이 희박한 환자에게 이러이러하니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치료받으면 좋아질 거라고 의사는 거짓말 하지. 환자 자신도 뻔히 알지만 그럼에도 의사를 나쁜 놈이라 하지 않는다. 그를 신뢰하고 믿는 것이다.
그 후로는 별 탈 없이 여행을 잘 마쳤다.
지난 일이니까 하나 고백한다. 사실 그 첫날밤의 그 일은 나도 경험했다. 문득 잠이 깨었는데 감은 눈꺼풀 위로 뭔가가 어른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보고 싶었으나 차마 눈을 뜨지 못했다. 그렇지만 무섬 같은 건 없었다. 곧 가겠지. 그게 다였다. 더 이상 시달리지는 않았다. 아마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은 장력이 세서 그런 줄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