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숲에서

사냥

설리숲 2011. 12. 15. 00:01

 

 산 어귀에서 사내를 만난다. 그가 누군지는 발발거리는 개를 서너 마리 먼발치서 보고 이미 알았다. 사냥꾼이다. 스쳐가는 내게 눈인사를 했을까. 낌새는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부러 시선을 피했으니 나는 모르겠다. 그의 눈에서 살기가 뻗쳐 나올까 나는 지레 두렵다. 얼른 피하고 싶다. 허공으로 뻗친 엽총 총구가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냉정하게도 시야에 들어온다. 개들이 희뜩희뜩 듣그러운 호흡소리로 내게 다가온다. 저놈의 개새끼들. 기실 사냥개들은 낯선 사람을 봐도 달려들거나 물지는 않는다. 놈들은 오직 표적인 짐승만을 공격하기 위해 조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 기세만으로도 사람 간이 작아지고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관심 있는 척 내게로 다가오다가는 금세 흥미를 잃고 제 주인을 따라 산기슭을 오른다. 멀리서도 희뜩희뜩 그 숨소리는 쟁쟁하게 들려온다. 사람에게 해를 주진 않는다는 사냥개들은 그러나 피를 보면 광기가 뻗쳐 순식간에 이성이 없어진다. 놈들은 그제 피를 즐기고 사냥꾼은 그런 개를 보고 흥분한다. 개도 사람도 같이 미친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가을이 이울 무렵 맞닥뜨리는 광경이다. 산 들머리나 산비탈, 또는 그곳으로 통하는 마을길에서 가끔 사냥꾼들을 보게 된다. 나는 그들이 혐오스럽다. 짐승을 죽이는 사람들이다. 건전한 스포츠니 어떠니 아무리 미화해도 살생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세상에 많은 취미가 있지만 고귀한 생명을 죽이는 걸 즐기고 낙을 삼는 건 할 짓이 아니다. 심사가 별쭝맞게 삐딱하다 욕을 먹을지 몰라도 나는 정말 그런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을 증오한다. 들머리에서 마주치는 그들의 몸에선 살기가 건너온다. 피비린내가 난다. 입은 웃고 있지만 잔인한 기운이 풍기는 걸 느낀다.

 

 어찌 죽이는 걸 즐기는 걸까. 가끔은 마을에서도 총소리가 들린다. 절대 안 되는 일이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총을 쏴야 한다. 자칫 애먼 사람이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놀음이다. 게다가 선불 맞은 짐승이 또 애먼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총소리는 인간에게 비정한 소리다. 위험하고 폭력적인 소리다.

총성. 어느 생명 하나가 맞아 쓰러졌는지 모른다. 왜 죽어야 하는지 영문도 모르고 단지 인간의 매저키즘의 욕정을 위해 고통의 피를 쏟고 죽는 것이다.

 

 나는 낚시꾼들도 싫어한다. 역시 생명을 낚으면서 즐거워하는 족속들이다. 누구는 그래서 낚아 올린 고기를 다시 놔 준다고 자신의 휴머니즘을 부각시키려 하지만 그런다고 면죄가 될 수는 없다. 바늘에 찔려 상처를 입은 고기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동안도 상처 입은 몸으로 비정상적인 생활을 할 게 아닌가.

 

 우리는 누구나 귀한 하나의 생명을 가졌다. 누구도 남의 그것을 탈취할 수 없다. 더구나 즐기기 위한 살생은 크나큰 죄악이다. 그 악업의 지실을 어찌 감당하려는가.

 

 나는 너무나 성질머리가 비뚤어진 것 같다. 사랑하라 사랑하라 이성은 그렇게 가르치는데도 불합리하고 불친절한 것을 접하면 늘 삐딱한 시선으로 만사를 대하곤 한다. 그렇다고 당당하게 맞서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얼마나 못난 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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