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초조하다

설리숲 2008. 11. 12. 22:55

 말 한마디 못 하는 심정은 얼마나 답답할까. 이국에 겁도 없이 건너와서 몸으로 부대끼고 보자는 그 의기는 가상하다만 참 보기가 안 좋다. 알아듣는 말은 하나다. 리홍! 하고 부르면 네~ 하고 대답하는 게 전부다. 오죽하면 저 혼자 뭐라고 주워섬기는데 그럴 땐 미친 여자 같기도 하다. 너희야 알아듣건 말건 난 내 맘대로 씨부려대겠다는 그 맘을 안다. 그렇게라도 해야 답답한 속이 어찌 달래지기도 하겠다. 책을 펼쳐보이며 손가락으로 짚어 준다. 한국 사람들이 쓰는 기초중국어회화책이다. 짚어 보인 단어가 ‘초조하다’이다. 그 한 단어로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알겠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난 자꾸 미안하다. 잘 쓰는 중국어 몇 단어 익혀야겠다. 간단중국어는 거창하고 그저 그녀가 혼자가 아니고 외톨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주고 싶다. 생각지도 않았던 중국과 중국어가 귀에 밟힌다. 중국 사람들을 무진장 싫어하긴 하지만 리홍을 보고 있자면 민족을 뛰어넘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애련한 감정이 생긴다. 미워하지 말자 편견을 갖지 말자.

 

 아하 그러고 보니 ‘커피’도 서로 통하는 단어다. 한국말도 아니고 중국말도 아니고 영어니까. 리홍이 타 주는 커피는 그저 그런 맛이다. 일회용커피믹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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