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겨울 이야기

설리숲 2007. 12. 11. 01:45

 

 눈을 뜨니 정오가 넘었다.

 간밤에 늦게 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여느 날 보다 한 시간이나 더 일찍 잠자리에 누웠는데.

 그렇다고 피곤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화려한 산골생활의 게으름이라지만 너무했다. 무려 12시간을 자다니.


 소원이다.

 정말 아침에 시간 구애받지 않고 늘어지게 자다가 그저 하루 종일을 뒹굴어 봤으면...

 이놈의 회사 때려치고 제발 그래 봤으면...


 누구든 소망하지 않겠는가.

 똑같은 일상 똑같은 일들의 나날들.

 생활은 늘 지겨움의 연속이다.

 

 허나

 그렇지만 그 누구라도 감히 탈출을 못하고 있다.

 설사 그 기회가 있다손 화려하게 뒹굴지 못하지. 과감히 떨쳐 버리지 못함이라. 늘 회사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못함이라.

 몹쓸 놈의 경제라는 관념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평생을 그것에 속박되어 다람쥐처럼 쳇바퀴를 돌리다 생을 마감할 것이다.


 어디서 산들 마찬가지다.

 직장생활이란 하루를 단위로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요, 시골의 농군이나 나같은 산골의 백수들은 하루가 아닌 한 해를 단위로 반복되는 세월을 맞고 보내고 있는 것이다. 반복만 하다가 일생은 가고 마는 것이다.

 다시 또 겨울이다. 작년 이맘때로부터 한 해가 지났다. 내년도 후년도 똑같은 세월이 반복될 것이다.

 역시 강원도다. 따뜻한 남쪽지방에서 돌아오는 날 골짜기에 흰눈이 펄펄 날리더니 사흘째 되는 날은 수북이 세상을 덮었다. 같은 땅덩어리 안에서 이토록 기후가 다를 수가 있나.


 떠나고 싶어.

 내가 아는 아줌마들의 소원이 대체로 그렇다. 부대끼고 치대고 앞에 늘 놓여있는 집안일들. 싫증난 남편 얼굴, 귀찮은 아이들 치다꺼리....

 누구도 구속하진 않지만 실은 갇혀 있는 몸뚱이.

 그렇지 않겠는가.

 가족들에 대한 사랑도 이쯤 되면 사랑이랄 수가 없다. 자꾸만 어디로 떠나고 싶다. 집이 아닌 곳은 어디라도 좋아.

 

 그렇지만 내가 아는 아줌마들은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 몸은 떠나 왔지만 마음은 감옥 같은 그 집을 떠나오지 못했다.

 첫날 어둠이 내리기 전에 그녀의 마음은 집으로 달려갔다. 이 녀석이 학교 갔다 와서 뭘 먹고 나갔을까. 반찬도 없어 남편이 오면 먹을 게 없는데. 남은 거 마주 세탁기 돌리고 와야 할걸. 내일이 관리비 내는 날인데 연체되겠네. 이왕 올거면 청소기라도 한번 돌리고 올걸. 두 남자만 있으니 며칠 동안 집안 꼬라지 말이 아니겠네......


 우리 삶이 다 그러하다.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완전히 버려야 하는걸. 남편과 자식 집안 회사걱정 돈걱정.... 잠시라도 완전히 버려야 하는걸.

 그렇지 않음 화려한 뒹굶은 그저 소망으로만 끝나고 만다. 나는 12시간 이상을 자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음을, 그러고 나서도 또 뒹굴며 짧은 겨울해를 넘기는 이 생활을 사랑한다. 내일 아침이 되어도 회사에 가려고 7시에 일어나 허겁지겁 세수를 안 해도 되는 화려한 백수가 나는 좋다. 자유다.


 결국 그녀는 이틀을 견디질 못하고 감옥 속으로 돌아갔다. 아마도 하룻밤을 자는 것도 편안하지 못했으리라.

 그들은 자유를 만끽할 자격을 얻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평생을.


 강원도는 참 눈이 많이 온다. 이 겨울을 또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려 쌓일 것이며 그 눈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겨울이야기를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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