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더러움의 가치

설리숲 2007. 9. 3. 16:36

 

 화장실이 좋을까 뒷간이 좋을까?

 

 당연 화장실이 좋지.

 얼마나 깨끗한가 말여. 거기 앉아서 밥을 먹어도 욕지기가 안 나온다. 똥을 누고 버튼만 누르면 물이 나와 샤악~ 사라져 버린다.

 그뿐인가. 향수도 놓아두니 냄새도 좋지, 물 대빵 잘 나오니 샤워 목욕도 하지, 빨래도 하지.


 예전 우리 뒷간은 어떤가.

 크윽 냄새! 똥덩어리 떨어지면 튀어오르는 파편들... 거기 앉아 있으면 모기는 왜 그리 달려드는지, 엄동설한엔 왜 또 그리 추운지 고추가 때각때각 얼어 버릴 지경이다.

 한여름에 꾸물거리며 기어나오는 구더기들... 온 집안의 파리를 양산하는 곳.

 또 왜그리 어둡고 음습한지 게 앉아서는 신문도 읽을 수가 없다. 저녁 어스름만 내리면 그 어둑신한 그림자가 무서워 근처에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던 어린 시절.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화장실이야 내 집 안에서는 그리 깨끗하지만 일단 내 집 벽만 뚫고 나가면 참말 지저분하다. 우리 것만이 아니라 이웃집 똥오줌들이이 죄다 한데 버무려져 버리니 그거 상상만 해도 욕지기 나온다. 그것들이 다 어디로 가는가. 강으로 가서 그 물을 다시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화시설도 하고 수돗물 취수에서 가정으로 들오기까지 몇몇 여과를 거치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은 우리가 내보낸 똥오줌 걸러낸 것 아니야?


 반면 뒷간은,

 겉으로야 더럽고 냄새 났지만 그거 다 거둬서 밭으로 간다.

 예전엔 잿간이라 해서 디딤돌 두 개만 놓았다. 거기 올라앉아서 똥을 누고는 쌓여있는 재를 나무삽으로 덮어 뒤쪽으로 밀어 놓는다. 그게 쌓이면 가져다가 논밭 거름으로 쓰는 것이다. 나무를 때서 난방을 했으니 재는 늘 나올 것이고, 재 또한 요긴한 거름이다.

 깨끗하고 완벽한 재활용이요 재생산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다는 아니다.

 보이지 않는 저 뒷편에 진리는 감춰져 있기도 한 것이다.

 내집 화장실은 깨끗하지만 한 뼘 벽만 나가면 세상에 가장 더러운 오물이 되는 것이다.

 

 

 

'서늘한 숲 > 햇빛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밀밭  (0) 2007.09.10
가을날의 서정- 정암사에서  (0) 2007.09.10
그 뜨거운 날 승부에서 석포까지  (0) 2007.09.01
소로마을의 도둑고양이  (0) 2007.08.27
바다엘 갔지  (0) 2007.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