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숲에서

설리숲 2006. 6. 21. 14:30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 가운데 뱀만큼 억울한 애들이 있을까.

 인간들은 뱀을 싫어한다. 어떤 이들은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 증오까지 한다.

 왜 미워할까. 이유가 없다. 그냥 싫어한다.

 뱀이 우리에게 밉보이거나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그저 미움을 받는 거다. 그러니 얼마나 억울한가.

 

 뱀을 생각한다.

 뱀은 우리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오히려 사람을 무서워 한다.

 산길이나 오솔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뱀은 우선 도망가기 바쁘다. 사람을 문다는 건 우리의 왜곡된 생각이다.

 뱀은 전혀 공격적이지 않다.

 다른 동물을 공격하는 건 오로지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생존하기 위한 절박한 사냥이란 말이다. 여느 생물들과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뱀은 먹이를 먹을 때 이빨로 씹어먹는 게 아니라 통째로 삼킨다. 그러므로 자신이 삼킬 수 있는 대상만 공격하는 것이다. 개구리나, 쥐 등 몸피가 작은 동물들이나 좀 더 큰 토끼 정도. 독을 주입해 죽기를 기다려 삼키는 것이다.

 사람과 같은 큰 상대는 전혀 공격할 의향이 없다. 먹지도 못할 걸 뭣하러 귀한 독을 소모하겠는가. 오히려 사람은 저들에게 무서운 상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만나면 냅다 도망가기 바쁘다.

 

 덩치가 큰 구렁이는 예외다. 얘들은 독을 품지 않는다. 먹잇감을 칭칭 감아 질식시켜 죽인다음 삼킨다. 워낙 힘이 세기 때문에 한번 감기면 그 누구도 살아남기 힘들다. 여기는 사람도 포함된다. 구렁이는 사람을 포함한 큰 짐승도 먹을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우리가 큰 구렁이에게 잡혀 먹을 일은 거의 없으니 구렁이는 예외로 보는 것이 옳다.

 

 흔히 누가 뱀에게 물렸다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러나 뱀은 먹잇감이 아니면 전혀 물지 않는다. 물렸다고 하면 분명 그건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느끼면 뱀은 본능적으로 난폭해진다. 사람이 그를 먼저 공격했을 것이다. 또는 길섶에서 갑자기 사람과 뱀이 맞닥뜨리면 뱀이 놀라서 사람을 공격할 수도 있다. 이건 그들의 자기방어를 위한 본능이지 저들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등산을 할 때는 지팡이를 갖고 가라 한다. 지팡이를 두들기며 혹시 있을 뱀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고 도망갈 시간을 주는 거다. 아니면 일행과 이야기를 하면서 가는 것도 좋다.

 

 다만 예외가 있다.

 가을에 뱀은 갑자기 난폭해진다. 겨울잠을 자기 위해 몸에다 잔뜩 독을 저장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뱀은 엄청 예민해져 이유없이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흔히 우리가 "저 새끼 잔뜩 독을 품어서 무섭다"라고 아무개를 경계하는데 이러한 뱀의 생태에서 따온 상황이다.

 그러므로 가을엔 무조건 뱀을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이왕이면 산엔 가지 않는 게 좋지만 그러나...

 

 뱀은 냉혈동물이다. 아마 우리가 뱀을 혐오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거다.

 뱀을 만져 보면 아주 차갑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피가 차가운 거다. 맞다 뱀은 냉혈동물이다. 한적한 아스팔트 길에는 예외없이 뱀들이 나와 일광욕을 즐긴다. 몸이 차갑기 때문에 따뜻하게 몸을 데우는 것이다. 그러다 차가 지나가면 그대로 유명을 달리하고 마는 비극을 맞기도 하고...

 단지 몸이 차가울 뿐이지 그들의 성질이 차가운 건 아니다. 흔히 뱀은 제 새끼도 돌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뱀이 제 알을 품고 부화하기까지의 정성은 여느 동물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모든 뱀이 알을 낳는 건 아니다. 직접 새끼를 낳는 종류도 있다. 살모사도 새끼를 낳는다. 살모사는 무서운 습성을 가지고 있다. 새끼가 어미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이 살모사(殺母巳)다. 그러므로 어미는 새끼를 낳자마자 이들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그들의 습성이 그러하니 제 자식을 돌보지 않는 냉혈동물이라고 지탄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살모사 새끼들이 제 어미를 잡아 먹는 게 아니라 힘든 출산을 하느라 기진맥진한 걸 보고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한다고 한다)

 

 

 뱀.

 외모가 흉칙하고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미움과 저주의 대상이 된 뱀. 성경에서 뱀을 몹쓸 사탄으로 설정한 이유도 있을 것이지만 전혀 공감 가는 내용은 아니다. 단지 신화일 뿐. 아무런 이유도 잘못도 없이 억울하기만 한 뱀.

 그러나 이 세상 어느 것도 증오와 저주를 퍼부을 수 있는 건 없다. 사람이 제멋대로 그렇게 정할 뿐...

 아마 가장 못된 건 인간이라는 족속이 아닐까.

 

 

 

'서늘한 숲 > 숲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둘기, 숲에서 날아오른다  (0) 2007.05.31
겨울 일상  (0) 2007.02.28
천년송의 비밀  (0) 2007.02.11
바람 불던 날 삐꿈쟁이 다녀가다  (0) 2005.04.14
그 여성  (0) 2005.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