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날이었다. 구주 오신 날에 왜 거기를 갔는지 모르겠다.
외국 사람들이 이해 못하는 것 중 하나가 한국인들의 크리스마스는 '연인의 날'이란다.
즈들 나라에선 가족들과 함게 보내는 게 상식이며 애인이 있어도 그날은 만나지 않고 각자 집으로 간다는 것이다. 근데 한국 사람들은 가족의 개념은 없고 죄다 쌍쌍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인 사람은 유난히 더 쓸쓸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다.
그렇긴 한데 한국은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좀 다르지 않나?
우리야 크리스찬이 아니라면 별 의미없는 날이니 가족과 보내야 하는 명절은 아니다. 그래도 이름붙은 날이니 심심해서 죽을 지경인 젊은이들이 어떻게든 즐기고 놀아 보려는 심리가 떠들썩한 축제로 만든 것 같다.
우리나라의 크리스마스는 젊은이들, 특히 연인들의 명절인 게 맞다.
한때 이곳을 거의 매일이다시피 지나다녔다. 그때는 양수리란 것도 두물머리라는 것도 모른 채 지나쳤었다.
해질녘의 강변이 아름답다는 양수리다. 저녁이면 서울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석양과 밤문화를 즐기는 곳.
저녁노을은 그만 두고 아침 일찌거니 나와 해돋이 장면을 찍었다.
혹독하게 쌀쌀한 바람 속이었다. 호안가의 물은 하얗게 얼었다. 깊은 겨울임을 실감한다.
호수가 있는 풍경은 어디든 아름답다. 겨울은 겨울이라서 그 쓸쓸하고 황량한 풍광이 더 아름답다.
양수리의 해돋이
예전에 가장 인기 있었던 드라마 <첫사랑>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맨 마지막 신에 찬혁과 효경이 강변 이곳 버드나무 아래 서 있다. 사진 속의 연인만큼 간격을 두고 서서는 그저 말없이 저만치 강을 바라보는 그 장면에서 주제가가 흐른다.
그리고 자막으로 싯구절이 흐르면서 끝나는데 무슨 시였는지 기억은 안 난다. '낮달'이라는 시어 하나만이 생각난다.
첫사랑의 설렘
풋사과 같은 향긋함
저 멀리 아득하지만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한 애잔함.
두물머리와 '첫사랑'과는 매치가 안 되는데도 이곳에 서니 그 시절 그 장면들이 영상으로 주욱 흐르는 것이다. 내게는 가슴 터질듯한 첫사랑이 있었나.
크리스마스날에 왜 거길 갔는지 모르겠다. 더이상 집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제발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의미없이 지나치고 싶다.
날은 저리 추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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