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에,
‘연인’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같은 제목의 주말드라마에 배경음악으로 쓰였을 뿐 그리 많이 알려지진 않은, 공일오비 정석원의 노래다.
이 노래가 은근히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었다. 더구나 내 나이 서른을 넘길까말까 하던 때라 어지간히 좋아했었다.
가사에 슬프면서도 슬픔을 절제하는 듯한 구절이 나온다.
아무도 없다지만 가만히 주위를 한번 둘러봐
누군가 기다려 너를
오랜 시간 그 눈빛으로
연인과의 이별이 아프지만 오랫동안 자신을 보아온 또다른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는, 그러니 지나간 사랑에만 매여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는……
이 노랫말이 사뭇 가슴에 담겼는데 실제로 내게 그런 사랑이 있었다.
H가 떠나 한동안 마음의 방황을 하며 허무해 할 때, 그때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또다른 눈길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그의 사랑을 알았다는 건 이미 때가 늦은 것이었다.
가을이었던가 겨울이었던가. 아무튼 제법 찬바람이 으스스하던 밤이었다.
약간 취기가 있던 그녀가 나를 집근처까지 바래다주었다. 한번도 단둘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보안등 불빛 아래서 그녀가 돌아섰다.
잘있어요. 즐거웠어요.
그리고 약간의 시간 간격을 두고는 마지막 말을 건넸다.
오빠.
그리고 어둠 속 저편으로 멀어져가는 뒷모습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이튿날 회사에 사표를 내고 어느 곳인지 모를 새로운 곳으로 가 버렸다.
그렇지. 응당 그 반대가 됐어야 할 것을 굳이 그녀가 날 바래다 준 이유였다.
“저는 아무나 오빠라고 안불러요. 제가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딱 둘뿐이거든요. 우리 오빠하고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요. 근데 아직은 그 오빠가 없어요”
언젠가 그녀가 하던 그 말이 명징하게, 정말 또렷하게 귀에 들렸다.
그녀가 마지막에 내게 던지고 간 그 말...
오빠.
그리고 한번도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리 오래는 아니어도 H와 연애를 했었다.
그 기간, 아니 어쩌면 H보다도 먼저 나를 보고 있었을 그녀를 생각함에 나는 한동안 가슴이 쓰렸다. H와의 이별보다도 H의 가장 친한 친구인 그녀의 눈길을 몰랐던 게 나는 길래 아팠던 것이다.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가는 그 좁은 어깨를 보면서 나는 줄곧 정석원의 ‘연인’ 그 노랫말을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