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고착돼 있는 것이 아니다. 유동적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진리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고 불편하고 거북살스럽기도 하다.
길을 간다.
시원하고 넓게 포장된 길이 있는가 하면 외지고 한적한 곳에 좁은 길도 있다. 당연 포장은 안돼 길바닥엔 울퉁불퉁 돌이 튀어나와 있다.
보통 넓은 포장도로가 좋다 한다. 시원하게 잘 달리니까. 그들이 보기에 오솔길은 참 불편하다. 차도 못 가고 걸어가기에도 발이 아파 불편하다. 그건 나쁜 길이다.
그러나 나와 같은 일부 여행자들은 그 좁다란 오솔길 걷기를 원한다. 내겐 그 길이 진리인 것이다. 반대로 넓은 길을 가는 사람들은 그 포장도로가 진리이니,
나는 그 도로가 나쁜 길이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도 함부로 내 길을 나쁜 길이라 말하면 안 된다.
상황이 바뀐다.
어느 날 나는 오솔길이 아닌 그 넓은 대로를 자동차를 타고 질주한다. 그럴 때 그 길은 얼마나 근사한가. 참 길 좋다. 잘 닦아 놨군. 저 오솔길은 차가 가기 힘드니 불편하겠다.
그럴 때 넓고 평탄한 그 길이 내 진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아저씨는 정선에서 태백 가시려면 어느 길로 가시나요?
그랬더니 가라 소리로 알아들었는지 그 분이 서둘러 일어나 나가신다. 악수는 하지만 얼굴 표정은 과히 좋아 보이지 않는다.
에구 노인네두... 좀 대범하시지 별것두 아닌 걸로 흥분하신담.
내가 하려던 말은,
정선에서 태백 가는 길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정선읍을 거쳐 동면으로 가는 길도 있고, 여량에서 임계를 거쳐 가는 길도 있다. 아님 좀 돌더라도 영월로 해서 가는 길도 있고, 강릉이나 동해 쪽으로 돌아가는 길도 있다. 태백으로 가는 길에 정석은 없다. 각자 자기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 선택하면 되지 자기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고 다른 길은 나쁜 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얘기를 하려던 거였다.
어째서 내가 믿는 하나님만이 진리이고 다른 건 악의 분파인가.
나더러 하루 삼십 분만 시간을 내서 성경을 읽으라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좋은 길이 보이는데 나쁜 길로 가는 건 어리석다고.
아저씨,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른데 나쁜 길이라 하지 마세요. 성경 안 읽는 사람은 죄다 악이고 어리석은가요.
태백에서 오신 여호와의 증인 그 아저씨가 그래서 몹시 기분이 상했던 모양이다.
그쪽의 종교는 너무나도 배타적이다. 난 그게 싫다. 다른 걸 이해하려는 관용이 없다.
작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되었던 선교단이 그렇지 아니한가. 알라를 절대자로 믿고 있는 무슬림 그들에게 예수를 믿으라 하니 그 얼마나 해괴한가.
어느 집에 한 남자가 들어와 여러 날을 살면서 그 자녀들에게 “너희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고 내가 좋은 사람이다, 그러니 나를 믿고 아버지라 하라.” 하는 것과 같다.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그 분들 이젠 안왔으면 좋겠지만서두 내색은 하지 못하고 만다. 처음엔 이것저것 주고받는 대화가 재밌기도 하더니 신앙적으로 어설픈 사람이 오면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고 짜증이 난다. 막무가내로 여호와만 주워섬기는데는 영 재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태백에서 먼길을 와 이 산골짜기까지 올라와 주는 그 성의가 있어 차마 내치거나 오지 말라는 소리는 못하겠다.
지금 몹시 배가 고픈 사람에겐 밥이 진리다.
피곤해 졸음이 쏟아지는 사람에겐 잠자는 게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