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부초

설리숲 2010. 3. 6. 21:39

 

 소설도 정통이 있고 대중이 있다. 뭐 명확하게 구분하는 기준은 없지만 그래도 확연히 눈에 보인다. 순수소설이 아니라고 해서 그들을 폄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글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한 것이다. 써서 혼자만 읽고 보관하는 거라면 그건 그냥 일기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자기 혼자 예술작품을 만들었다고 흡족해 하는 건 의미가 없다. 좋은 영화는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영화가 좋은 영화다. 아무리 대중소설이라 해도 좋지 않은 소설은 독자가 절대 찾지 않는다. 자신의 현실을 알지 못하고 사람들이 작품을 몰라준다고 탓하는 건 몰라도 너무 모르는 치기다. 그렇다고 귀여니 글이 대중적으로 잘 팔린다고 해서 대중소설이라 할 수는 없다. 그건 글도 아니고 그저 낙서라고나 할까.

 

 70~80년대를 풍미했던 대중작가들이 몇 생각난다. 박범신, 최인호, 한수산, 김이연 등등. 감수성 풍부했던 그 시절에 그들의 소설은 정말 착착 감기었다. 하이틴소설은 어린 소견에도 유치해서 재미 없었다. 그들의 소설이 참말 좋았다. 나이가 어느 정도 되니까 그것도 시들해졌다. 흠, 역시 애들 보기 딱 좋은 소설이군.

 한수산은 ‘감성의 작가’라는 별칭이 늘 붙는다. 맞다. 그의 소설은 독자를 아름다운 동화 속으로 이끌고 들어간다. 여성적이다. 파스텔화를 보는 듯하다. 또한 내가 감독이라면 근사한 연애영화 한 편 만들고 싶은 그건 소설이다. 실제로 그 시대의 그들의 소설들이 영화의 원작으로 많이 쓰이기도 했으니까.

 말하자면 완벽한 대중소설이다.

 그러나 어쨌든 대중소설은 쉽게 뇌리에서 사라진다. 어쩌면 그게 기준이 아닐까. 대중가요가 한때 인기를 구가하다가도 금방 저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과 같다. 고전음악은 많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들 곁에 있다.

 한수산은 내 고등학교 동문이기도 하다. 동문이라서가 아니라 그 부류들 중에 그래도 가장 읽을 만한 작가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최인호의 단편 <위대한 유산>을 내 나름 최고로 꼽고 있긴 하지만.

 <부초>는 그의 대표작이고 대중에게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작품이다. 또한 출판사에 엄청난 부를 안겨준 소설이기도 하다. 그의 다른 소설들과는 퍽이나 다르다. 감성으로만 도배를 하던 것에서 탈피해 삶의 진지함이 들어 있다. 무거운 주제의식이 있다. 아마 그때까지 써 온 것들은 <부초>를 쓰기 위한 습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왠지 모를 허전함이 있었다. 타고난 감성은 어쩔 수 없어 무거운 주제와 소재에도 불구하고 그 감성이 여지없이 들어가 있어 공허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역시 대중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해남은 어디에 있는가.

 내 요즘 나날은 그야말로 유랑극단이요 부초같은 나날이다. 어디 정해진 데가 없이 상황에 따라 거처가 옮겨진다. 거처가 정해지면 바리바리 차 두 대에 짐을 싸 싣는다. 그리곤 그곳에 가서 짐을 풀어 잠시 애옥살이를 한다. <부초>의 서커스단과 다를 게 없다. 그들은 곡예를 팔아 돈을 벌고 우리는 순전히 노동력을 팔아 돈을 번다.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에피소드도 많이 생긴다. 노동은 힘들지만 그런 희로애락이 있어 제법 견딜만 하다.

 

 따뜻한 남쪽 기후에 길들여져 강원도에 오니 엄청 춥다.

 이곳에도 역시 눈. 우리나라에서 강원도와 호남지방에 눈이 참 많이 내린다. 두 지역에 내리는 눈은 차이가 있다. 겨울을 반으로 나눠 전반기에는 호남지방에 많이 내리고 후반기에는 강원도에 많이 내린다. 가끔은 4월에도 눈이 내리기도 한다.

 호남에는 폭설이 내리지만 그때만 불편하고 기후가 따뜻하니 금방 녹는다. 강원도는 양은 적더라도 자주 내린다. 먼저 내린 눈이 녹기도 전에 또 오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 동안은 늘 눈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후반기에는 엄청난 폭설이 오기 때문에 강원도의 겨울은 길고 지루하기만 하다.

 

 영동지방에 폭설이 내려 거의 마비상태가 됐나 보다. 역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은 참 불편한 계절이다.

 

 

 왜 유랑을 부초라고 표현할까.

 부초는 개구리밥이다. 논물에 빽빽하게 떠 있는 개구리밥이 아무리 봐도 떠돌이하고는 걸맞지가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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