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소나무가 하나 있다.
아니 괴로워 보이는 소나무가 있다.
정선 함백의 엽기소나무.
무성한 숲을 죄다 밀어버리고 드넓은 평원을 만들었다. 그곳에 그 소나무가 하나 뻘쭘하게 서 있다.
저 소나무는 왜 마저 베어 버리지 않았을까. 어울리지 않은 그 생경함에 영화감독은 모티프를 느꼈을까. 카메라를 들이대더니 일약 소나무는 스타가 되어 있었다. 자신은 유명세를 알고 있을까.
울울창창 숲에서 수많은 나무들 가운데 평범하게 섞여 살았을 뿐인데,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느날 이름도 붙여졌다. <엽기적인 그녀 소나무>.
지금은 <엽기소나무>.
헐... 엽기소나무라니...
가만히 서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먼놈의 이름을 저리 지랄같이 붙였다냐.
당최 사람들은 나무 하나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무슨 드라마가 찍힌 곳이라면 백리를 마다않고 달려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한적한 바닷가에 그저 무심히 서 있던 소나무가 어느 날 뜬금없이 ‘고현정소나무’라는 이름을 얻더니 수많은 인파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아무라도 나가 놀던 해변이 이제는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다.
전국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가 아닌 곳이 있을까. 그렇건만 지자체들은 서로 앞 다투어 홍보하고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다. <집으로>에 나왔던 지통마의 오두막집은 하도 사람이 들끓어서 할머니는 결국 견디질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가고 말았다. 평생을 정들여 살던 그 집을 말이다.
함백의 엽기소나무는 차라리 베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조용히 살고 싶은 나무를 사람들은 그저 몰려들 와서 못살게 구는 것이다. 소나무 주위엔 온통 쓰레기가 묻혀 있다. 영화에서 하듯이 너도나도 종이에 뭔가 글을 적어서 파묻고 가기 때문이다. 그냥 묻는 것도 아니고 오래 썩지 말라고 플라스틱 캡슐에다 넣어서 묻어 놓았다. 이젠 더 이상 묻을 데도 없다. 삽으로 아무데나 뜨면 캡슐들이 한 삽 가득히 떠진다.
인간들의 하는 모양새가 그저 신기하다. 아무 것도 아닌 걸 즈들끼리는 정말 심각한 것처럼 난리들 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