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사람들 가을 나들이.
가을은 하루하루가 참 예쁘다는 노래 가사도 있듯이
일 년 중 가장 아름답고 상쾌한 이 계절의 성찬.
한국에서 내장산 설악산과 함께 가을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는 청송의 주왕산.
아직은 철이 일러 눈에 담을 단풍은 미흡했지만 그럼에도 주왕산 계곡은 인산인해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아마 내주 주말이면 이곳 단풍도 절정이겠고 인파도 상상을 초월하리라는 예상을 한다.
20대 중반 때였을까. 직장 동료 몇과 오봉산 소풍 갔던 날 이후 참으로 오랜만에 김밥 메고 나온 야유회. 역시 소풍은 예나 지금이나 애나 어른이나 김밥이라야 그 격이 맞는다.
알려진 명성대로 주왕산의 비경은 가히 최고라 할 만하다. 특히 학소대와 용추폭포로 이어진 절경과 주왕굴의 신비로움이란!
전에 한번 이곳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마치 자신이 수도승인 양 착각하여 구도(?)의 방랑을 하던 시절이라 길만 보고 걸었었다. 눈 돌려 이런 비경들을 보려는 여유와 낭만 따위는 사치라고 치부했었다. 다시 찾은 주왕산이 처음 온 듯한 기분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원초적 아름다움도 외면하면서 무슨 얼어 죽을 구도였던가.
이제 새삼 주왕산의 진면목을 대하니 퍼뜩 느껴지는 것,
이게 진리구나.
눈에 보이는 것부터 맹종하기로 하자.
화려한 오색의 만추도 좋지만 아직 모자라서 엷은 이런 풍경이 또한 좋다.
나뭇잎 색은 푸르지만 대신 사람들의 옷 맨드리가 다채롭고 화려하다. 그들의 옷차림에서 가을을 느낀다.
명소를 배경으로 찍으려 하지만 뒷 배경들이 워낙 스케일이 큰지라 전경이 프레임에 다 안 들어온다. 게다가 사람들은 밀물처럼 휩쓸려 지나가니 카메라 앞을 가리기 일쑤요, 잠간의 빈틈이 생길 때를 포착해 셔터를 누르는 일이 엔간히 어렵기도 하다,
더구나 최악인 건 막걸리 두어 잔 마신 탓에 정신이 아뜩하니 카메라 매뉴얼도 엉터리로 조작해 어떤 건 초점도 안 맞아 폐기처분된 사진도 여러 장 된다. 아 꽐라된다게 이런 거구나.
과연 사과의 고장이라. 보이느니 맨 사과밭이요, 가지가 찢어지게 주렁주렁 탐스런 사과다. 자판기까지 있을 정도로 청송은 사과의 명산지다. 목하 사과의 나라다.
데크에도, 담장 위에도, 산그늘 내린 기슭에도, 음식점 테이블에도 가을이 내려앉았다.
이제 이 가을도 곧 가버리겠다.
영원할 것 같던 지난여름의 극악했던 폭염도 그리 무상하게 스러졌으니 가을도 별 수 없으리니.
한때는 여러 달을 길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들판에 서리가 내릴 즈음 추워서 더 이상 한둔할 수 없게 됐을 때 집으로 돌아왔다.
지가 무슨 솔베이그나 되는 것처럼...
달팽이가 되고 싶었다.
무겁게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
가다가 어둠이 내리면 그곳이 잠자리요,
햇살이 쏟아지면 다시 길을 떠나는...
그때는 그랬다.
이제는 못하겠다. 내 열정이 이미 많이 시든 탓이다.
몸도 그때와는 다를 것이다.
청춘의 한 시절,
내 열정을 맘껏 발산했던 그 시절이 나는 대견스럽다.
그때를 떠올리면 자꾸만 팔뚝에 힘이 들어간다.
나이는 쪼매 먹었어도(?) 아직은 스스로 달팽이라 칭한다.
또는 그렇게 살고 싶다 자유롭게...
18년 전의 그날도 가을이 한창이었다
파헬벨 : 카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