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구봉산 휴게소.
데이트를 하든 나들이를 하든 젊은 사람들이 가는 곳은 뻔했다. 명동거리 아니면 공지천, 또는 그 언덕을 올라 안보회관 어린이회관이 다였다. 조금 발품을 팔면 어린이회관을 넘어 중도선착장 일대가 있지만 거기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주말이나 휴일에 나가게 되면 이런 장소에서 아는 사람 서넛은 반드시 마주치고 만다.
그런데 구봉산 휴게소라는 데가 자꾸 회자되는 걸로 보아 새로 생긴 공원이겠거니 무심했었다. 춘천에 오래 살면서도 구봉산을 알지 못했고 듣자 하니 그 휴게소라는 데는 버스가 안 가는 곳이었다. 자가용이 있지 않으면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택시를 불러 타고 꼭 가고 싶은 데도 아니어서 나와는 상관없는 장소였다.
알고 지내는 아가씨들이 가끔 안날 밤에 구봉산휴게소에 다녀왔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제 차가 있는 것도 아니요 택시를 불러 타고 갔을 리도 없으니 남자랑 자가용을 타고 갔다는 말이렷다. 당시만 해도 우리 또래에 제 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요즘처럼 흔하지 않은 때라 자가용 끈다고 하면 제법 어깨에 힘 좀 주고 여자들한테 선망을 받을만 했다.
고까짓것.
아마 나는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겉으로는 나와 상관없는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이 공연히 천박해 보일까 싶어 부러 관심 없는 척을 했지만 지난 후에 회고해보면 내 본심을 감추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깨닫는다. 자가용이 있어 곤댓짓을 하고 다니는 치들에게 은근히 시기심이 있었을 것이다. 시기심을 넘어 기실은 자가용을 끌고 구봉산휴게소를 다닐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은근히 호감을 주고 지켜보는 아가씨까지도 거길 다녀왔다고 하는데는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그랬었다. 차가 내게 가장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후로 내게도 차가 생겼을 때 얼마나 행복했던가. 가지고 싶던 것을 오래 갈망하다 얻을 때의 기쁨은 정말 크다. 아무 때라도 데꺽데꺽 가질 수 있는 사람의 기쁨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자의 자기위로는 아니다.
그리고 내 차를 끌고 구봉산 휴게소를 갔다. 그 희열감. 가 보니 뭐 그저 그렇건만 오랫동안 애써 본심을 감춰 가며 상상만 하던 그곳엘 갔다는 행복감이 얼마나 달콤하던지. 하기사 그리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의 외곽 높은 곳에서 한눈에 내려다보는 전망이 일품이었다. 휴게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도 좋았고 흔한 쌍쌍들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러던 중에 사촌누이로부터 소개팅(?당시엔 소개팅이라는 말이 없었지만)을 받았다. 결혼할 나이였으므로 더러더러 여자를 만나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개중에는 진짜로 결혼하고 싶어 프러포즈 한 여자도 있었다. 그래도 혼자였던 때가 많았다.
사촌누이가 소개해준 아가씨는 외모가 좋았다. 내 스타일이거나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몸매가 날씬하고 마스크가 발랄한 여자였다. 명동거리에 나가면 꼬시고 싶다 할 정도의 괜찮은 여자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녀가 그런 여자였다. 나보다 못난 남자들이 이쁘고 날씬한 여자들을 데리고 다는 걸 보면 그때마다 의기소침하곤 했었다. 당시 히트쳤던 노래 ‘신인류의 사랑’의 노랫말이 꼭 나였다. 내가 그간 만나던 여자들은 몸매가 그리 빼어나진 못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소개팅녀는 아주 맘에 들었다. 단순히 외모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만약 사귀더라도 오래 가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구봉산휴게소의 점원이었다. 그동안 그곳을 몇 번 다니면서 제법 괜찮은 여자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얼굴도 한번 자세히 보지는 못했었는데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퇴근시간에 맞춰 ‘내 차’를 끌고 휴게소에 가서 픽업도 하고 다른 여느 연인들처럼 평범하게 만남을 하긴 하면서도 내 진정으로 우러나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저 명동거리에서 흔하게 만나는 ‘꼬시고 싶은 여자’로만 느껴졌지 진심 내 여자라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쪽도 마찬가지여서 처음부터 내가 그리 호감이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 외모면 역시 ‘꼬시고 싶은 남자’가 있었을 테고 그런 눈에 내가 성에 찰 리 없었다. 어느 때인지 확실하지도 않게 우린 흐리마리 마무리를 했고 한동안 구봉산 휴게소를 가지 않다가 어느 저녁에 가 보니 다른 아가씨가 일하고 있었다.
뭐 어차피 처음부터 그리 될 걸 짐작했거니와 절절한 정도 주고받지 않았으므로 이별이란 말도 어색한 것이었다. 오히려 나는 홀가분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꼬시고 싶은’ 예쁜 아가씨와 만나고 사귀었으니 그거면 족했다.
춘천을 떠나 있다가 오랜만에 구봉산휴게소를 찾았다. 그리 큰 변화는 없었다. 예전 아베크족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에 비해 아이들과 같이 놀러온 가족들도 상당히 많아진 게 약간의 변화였다. 참말 이곳의 전망은 좋다. 저쪽 소양강 건너 내가 살던 아파트도 지척인 양 가깝게 보인다. 반추해 보면 그 아파트 살 때가 제일 즐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불행한 건 아니었지만 생활이 편리한 아파트를 떠나 이곳저곳 다니면서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헙수룩한 집에서 사는 것 보다는 못하다는 걸 깨닫는다.
나라는 인간의 속성이 그런 걸 어쩌랴. 예쁜 여자보다는 아름다운 여자가 좋고 크고 튼실한 집보다는 지금 같은 이런 생활이 좋다. 외이셔츠에 넥타이가 아닌 여전히 그림 그려진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다니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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