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카페 <고독>

설리숲 2013. 7. 22. 02:58

 우리는 소간령 깊은 밀림을 지나 바다에 이르렀다.

 해는 산맥 서쪽 너머로 기울고 곧 저녁이 드리울 바다가 거기 있었다.

 여름날은 참 길기도 하다. 바다가 보랏빛으로 어두워지려면 한참이나 더 있어야 한다.

 

 

 

 카페 <고독>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검은 육신을 육중하게 박고 앉아서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나그네들을 보고 있었다.

 

 남애 해변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고 우리는 비로소 아슴푸레 사위어가는 해변을 걸었다. 다양한 군상들. 참으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큰 세상.

 간단없이 들려오는 파도소리. 그 태초의 어울림과 더불어 들려오는 색소폰소리. 끈적끈적한 밤업소에서나 어울릴 듯한 그 소리가 여름저녁의 바다에서 사뭇 감성을 두드리며 모래톱 저 멀리로 번져간다. 간간히 들리는 폭죽소리. 카페 <고독> 테라스에서 들리는 왁자한 술렁거림. 해변의 밤은 고독처럼 시나브로 검어져 갔다.

 

 

 여주인은 카페 이름처럼 보헤미안이듯 했다. 고독은 자유요 자유는 고독이다.

 우리 늙으신 어머니들 이후로는 완전히 사라진 쪽진 머리를 그곳에서 보다니. 반백이지만 낯빛이 소녀처럼 끼끗하고 미추름한 카페 여주인은 쪽진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분위기와 전혀 생경하지 않다. 그의 몸에 밴 자유의 기품이 그대로 발산된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물소의 뿔처럼.

 오대산 그윽한 골짜기에서 십수년을 고독하게 살다가 남애 해변으로 말년을 보내기 위해 왔다면서도 늘 그 숲이 그립다고 했다. 차제에 카페를 적당한 사람에게 넘기고 다시 오대산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고독과 자유에 길들여진 사람은 그렇게 살수 밖에 없다. 카페 이름도 고독이라고 지어 붙인 그 팔자도 참 어연간한 팔자다.

 나는 이런 유의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을 좋아한다. 어쩐지 고독하고 슬프다. 이 고독은 자유와는 의미가 다른 쓸쓸함의 고독이다. 우리가 왜 어울려 사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그저 저 산맥을 넘는 바람처럼 목적도 없는 여행이라고 우리 일행의 한 여자가 샹송가수처럼 읊조린다. 다들 눈이 벌겋게 취기가 올라 있다. 주인 여자는 먼저 보내고 우린 남은 술을 마시며 버지니아 울프가 아닌 인간의 늙음에 대해 주제가 산만한 얘기를 늘어놓고는 달도 없는 그믐밤의 칠흑 같은 바다로 나왔다.

 초저녁의 부나함은 사라지고 남애 밤바다는 고요하다. 내게 오카리나를 청한다. 술 취해서 못 하겠다고 핑계를 댔지만 아까의 색소폰소리에 버금갈만한 연주가 자신 없어서가 진짜 이유였다.

 꿈결인 듯 아스라이 들리는 파도소리를 뒤로 하고 내일의 여정을 위해 진짜로 꿈속으로 들어간다.

 

 

 

 빛과 어둠, 흑과 백, 이승과 저승, 9월과 3월처럼 바다의 아침은 간밤의 그것과 다른 세상이다. 아 또 하루를 살았고 새로운 날을 만났다. 수없이 맞고 보내는 날들이지만 그 하루하루가 다 같은 하루가 아니란다. 한번 보내면 영영 다시 올 수 없는 절박한 삶이란다.

 

 여름날은 참 길기도 하다. 눈을 붙이자마자 바로 부지런히 일어났는데도 바다는 눈부시게 밝아 있었다. 이미 백사장은 수많은 발자국들로 새로운 날을 시작하고 있었다.

 

 카페 <고독>

 자유를 뒤로 하고 여주인이 오랜 세월 살았다는 오대산 어느 골짜기를 향해 떠났다. 거기엔 또다른 자유와 고독이 있을 것을.

 

 

 

 

 

                                 타레가 :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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