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노래는 의미가 없다. 연극은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없다면 공연이 아니라 그냥 연습이다. 얼마나 서서 노래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힐끗 한 번 쳐다볼 뿐 무심하게들 지나쳐 간다. 발치의 종이가방에는 그래도 천 원짜리랑 오백 원짜리가 수북하게 담긴 게 보인다. 노래는 안 들어도 적선하듯 넣어준 모양이다.
내가 다가가 유일하게 관객노릇을 해 주었다. 가수보다도 관객인 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거금 지폐를 보태 준다. 예술인의 공연에는 그에 상응하는 돈을 지불해야 옳다. 내 생각은 그렇다. 도서관에서 공짜로 책을 가져다 보는 건 옳지 않다. 책은 저자와 작가들의 지적재산이다. 고뇌와 땀으로 만들어낸 저작물을 보는 데는 당연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공연도 다 그렇다.
노래를 듣지도 않으면서 돈을 지불하는 것도 옳지 않다. 가수는 거지가 아니다. 노래를 팔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다. 나는 중학생들의 사물놀이를 보고 나서도 장구에다 돈을 끼워준다. 그것이 옳다. 기량이 좋든 나쁘든 그들의 음악을 들었으니까.
한데 이 친구 (그가 준 명함으로 이름이 Joe라는 걸 알았다) 별로 잘하는 노래가 아니다. 아니다 모르겠다. 뭔놈의 노랫소리가 들려야 말이지. 피죽도 못 먹었는지 당최 노래를 하는 건지 시를 읊고 있는 건지. 여러 곡 들었지만 기타 연주도 다 똑같다. 에구 이 친구야 좀 고래고래 목청을 돋우라니까.
그래도 나는 거리에서 기타를 메고 스쳐 지나가는 아티스트를 보면 알지 못할 매력을 느낀다. 그들에게서 보헤미안의 자유를 느낀다. 왠지 고독하고 낭만적인 인간일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조의 노래를 들었고 거금의 대가를 지불했다. 일전에 홍대거리에 갔다가 역시 노래하는 아가씨에게 거금 만 원을 준 적이 있다. 양중 씨도 만 원을 주었다. 단 한 곡의 노래도 듣지 않고서 말이다. 동행인 여자들이 우리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 아가씨가 예쁘니까 준거지? 맞지 않다. 예쁜 여자인 건 맞지만 못 생긴 남자였어도 그랬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술가니까. 그들의 예술은 어쨌든 그들에게는 자신이 뿜어낼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지적재산이니까. 다만 단 한 곡도 듣지 않았다는 게 나의 문제가 될 순 있겠지만.
조는 오늘은 또 어디서 기타를 퉁기고 있을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랠 부르며 외롭게 서 있을 그가 눈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