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종류가 참 많다.
장대비 소나기 보슬비 안개비 이슬비 가랑비 는개……
오늘 비가 내린다. 이런 비는 무슨 비라 할까. 내리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고 창공은 뿌연 습기. 우산을 쓰기엔 비가 너무 적고.
거리엔 우산을 쓴 사람보다 안 쓴 사람이 더 많다. 나는 우산을 쓰기로 한다. 나는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저들은 잠깐의 노출일지 모른다. 남들이 다 그런다고, 우산 쓴 게 좀 멋쩍다고 저들과 같이 할 수는 없다. 사는 건 제 스스로 조절해야 한다.
날마다 미어터지는 클럽이지만 그 중에 날마다 오는 사람은 없다. 이따금 또는 어쩌다 놀러오는 사람들이다. 남들은 다 저리 흥청하게 즐긴다고 나도 매일 클럽에서 놀 것인가.
고 이문구 선생은 그의 소설에서 내가 세상을 주도해야지 세상이 나를 주도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남들이 다 학원이다 과외다 비싼 돈 들인다고 나도 내 아이를 그렇게 해야 하는 걸로 알고, 남들이 중형차 탄다고 다들 그러는 걸로 알고, 남들이 그러하니까 다들 그러하는 걸로 알고 나도 그렇게 해야 하는 걸로 알고……그러니 평생 고달프지 않은 날이 없고 가랑이는 찢어지고. 현 시대의 사람들은 나(我)가 없다. 유행과 시류와는 전혀 다른 의미다.
남의 시선과 체면을 의식하지 말아야지. 저들이 우산을 안 쓰고 걸어다닌대도 나는 옷을 적시지 말자, 나는 오래 걸어야 하고 우산이 필요하다. 똑같이 젖어도 저들은 세탁기에 넣어 간단히 옷을 빨겠지만 나는 세탁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