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을 입은 모든 길짐승을 위하여 북을 치고 이어
물짐승을 위하여 목어를 두드린다 그리고
허공을 떠다니는 날짐승을 위하여 운판을 울리고 마지막으로
이승의 인연을 다한 지옥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 종을 깬다.
불전사물(佛殿四物) 법고 목어 운판 범종.
해인사에 가서 법당을 찾아 올라가려는데 우레처럼 울리는 소리. 마치 가야산을 무너뜨리기라도 하려는 듯 커다란 울림이 산사를 뒤흔든다.
법고소리다. 여태껏 법고는 수없이 보아 왔지만 그 소리를 직접 들어본 적은 없었다. 몸속 저 밑바닥에서 과거와 치욕을 들그서내는 기묘한 울림.
소리를 듣는 것도 처음이요 법고 치는 걸 보는 것도 난생 처음이다. 종교나 종교적 의미를 떠나 그것은 일종의 예술공연 행위다. 스님은 퍼포먼스를 버리고 관객은 공연을 구경한다.
주워들은 상식으로는 법고를 칠 때 마음 심(心)자를 그리며 친다 했는데 스님은 그렇진 않다. 관객도 제법 되니 스스로 흥이 나서 현란한 동작으로 멋들어지게 한바탕 놀아제낀다. 보는 사람도 흥이 난다.
이어 범종을 깬다. 몇 번을 깼는지는 알 수 없고 나는 다만 생전 들어보지 못한 운판소리를 듣게 되려나 그것만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범종만 깨고는 이내 사라져 버린다. 이 절은 길짐승과 저승 중생들만 위하고 물짐승과 날짐승은 홀대하나 보다.
아무려나 그 울림 세계 곳곳에 광명을 주시옵기를.
해인사의 단풍
바빌로프 : 아베 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