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아 이런!

설리숲 2012. 6. 25. 22:54


 유명 관광지나 유원지를 다녀 보면 맨 여자들 천지다.

 관광버스가 한 무리 쏟아 놓는 것도 아지매들 천지고, 효도관광 온 무리도 맨 할매들 천지다. 홍대 앞이나 명동거리를 가면 맨 아가씨들 천지.

 대체 사내들은 죄다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아마 십중팔구 집에서 뒹굴며 잠을 자거나 TV 리모콘을 쥐고 있을 것이다. 추측일 뿐 남자인 나도 그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은 번잡하게 움직이는 걸 귀찮아한다. 모처럼 쉬는 날 그냥 쉬고 싶다. 나갈 테면 느들이나 나갔다 와. 여자들을 내보내고 소파나 방바닥에 뒹굴고 있을 것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 드라마를 보니 세 자매가 일을 놓고 여행을 떠나는 정경이 나온다. 남자들이야 실은 이런저런 여건상 많이 다니고 또 놀기도 하는 기회가 많다. 여자들에게 여행이란 짜장 금쪽같은, 어쩌면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중대사다. 그래서 잘 놀 줄도 모르고 즐길 줄도 모르는 모양이다. 이건 다 남자들 잘못이 크다.

 내 누이들이 오버랩된다. 어느 해 연분에 세 누이와 함께 여러 날 전국일주를 한 적이 있다. 같은 배에서 나와 어릴 때는 가난해서 커서는 제각각 가정 울타리 안에 사느라 동기간에 여행해 본 적이 없다. 세 자매가 의기투합해서 막내동생인 나를 꼬드겨 기사를 삼아 어쩌면 생애 가장 화려한 날일지도 모르는 며칠을 보냈었다. 두고두고 그 때를 얘기하면서 그 얼굴들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

 농담인지는 모르나 내게 또 제안을 한다. 너 차 바꿨다며? 그럼 우리 태우고 또 한번 갔다 올래? 내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아 신랑들은 뒀다가 국 끓여 먹을 건가? 왜 나한테들 이러셔? 그렇게 거절 아닌 농담을 했지만 속으로는 안다. 우리 자형들도 보통의 남자들처럼 움직이기 싫고 나가기 귀찮아하는 족속이라는 걸. 아내를 사랑하는 건 틀림없지만 막상 몸을 움직이는 건 또 그리 여의치가 않다.

 그러니 관광지에는 여자들만 버글대는 것이다.

 

 내 사랑하는 누이들을 위해 내심은 당연히 동행해 주고 싶다. 같이 가자면 언제라도 응할 것이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화려한 휴가.

 그녀들도 이젠 많이 늙었다. 갑자기 울컥 눈이 아프다. 세월은 정말 덧없이 흘러만 가는구나. 꽃다운 처녀 적에 한 집에서 오골거리며 살던 때가 그리 오래지 않건만 사람의 시간은 어찌 이리도 짧은지 모르겠다. 며칠 후면 작은형 회갑연이다. 이런! 회갑 진갑은 부모들에게만 있는 줄 알았더니 내 형제들이 회갑을 맞고 고희를 맞고... 아 이런... 그렇구나... 너무나도 너무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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