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상실의 시대

설리숲 2012. 4. 23. 00:50

숲을 소요하다가 미세한 소리를 하나 들었다. 고라니나 노루겠거니 했는데 저만치 움직이는 건 사람이었다. 여자였다. 이 숲에 웬 여자가. 뭘 하나 궁금하기도 전에 내가 얼른 도망쳐 피했다. 이 외진 숲속에서 사람, 그것도 사내를 만났을 때의 상대방 여자는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까. 그네에 대한 배려보다도 내가 그런 존재가 되는 게 기분 나빠서가 더 먼저일 것이다. 사내라는 게 참 불편할 때가 많다.

 

 늦은 밤 후미진 골목길에서 만나는 여자도 무섭다. 여자가 나를 무서워하는 것만큼 나 역시 그런 상황이 두렵다. 저 앞에 여자가 걸어가고 있다. 똑같은 간격을 유지해야 할까. 그럼 저쪽에서 두려워할 테지. 그럼 속도를 줄여 처질까. 그럼 저쪽에서 두려워할 테지. 그것도 안 되면 잰걸음으로 쫓아가 추월해야 할까. 어떤 처신을 하더라도 마차가지다. 그네에게 나는 치한 같은 존재다. 세상이 어두우니 사내로 산다는 게 참으로 불편하다. 내 마음대로 내 갈 길도 못 가는 해괴한 시대. 예전엔 예쁜 아가씨 꽁무니 따라다니며 연애를 걸곤 했지. 그게 낭만이라 생각했는데 낭만이 범죄가 돼 버렸다.

 

 유지인 윤일봉 주연의 <내가 버린 남자>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파티장이다. 스물아홉인데 아직도 시집을 못 간 파싹 늙은 노처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1978년 영화다. 그땐 그랬지. 지금은 20대에 시집가면 빠르다고 한다. 그땐 여자 나이 스물다섯을 넘으면 노처녀라는 꼬리표를 달아 줬다. 하물며 스물아홉이라니. 내 누이 둘도 스물세 살에 결혼했다. 그 나이쯤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고 성숙한 때가 아닐까 한다.

 

 어째 결혼이 늦어지는 걸까. 육체 발육이 늦어졌나 정신적인 완숙도가 늦어졌나. 아님 그 반대로 결혼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상을 억제하는 개념이 성숙한 건가.

 어쨌거나 결혼하기가 힘들어진 시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모르나 정상적인 시대는 아니다.

 

 시대가 암울하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여자들의 치마가 짧아진다고 한다. 일견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은 말인 듯하다. 혈기방장한 젊은이들이 한창 예쁜 아가씨들을 쫓아다니며 구애를 해야 할 때 그들은 그렇게 할 자유를 가지지 못했다. 앞에 놓인 길이 너무나 험난하고 좁다. 아가씨들을 돌아볼 여유 없이 그들은 절박하게 일자리를 찾아 헤맨다. 그런 그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여자들이 자꾸만 치마를 짧게 자른다는 그럴듯한 논리다.

 

 결혼을 늦게 하든 어떻든 시대적 트렌드니 다 괜찮다. 그렇지만 결혼하고 싶은 희망이나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아가씨 꽁무니 쫓아다니며 낭만적인 연애들을 했으면 좋겠다.

 아니 그것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어둔 밤 후미진 골목길에서 앞에 걸어가는 여자 때문에 내가 불편하다 못해 두렵기까지 한 이런 시대는 얼른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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