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면서 필요한 낱말이 생각이 안나 다달거리거나 얼버무릴 때가 허다하다. 그럴 때 얼굴이 붉어지고 창피하기도 하다. 그런 경우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마는 나는 유독 잦은 편이다. 가령 적반하장이란 낱말을 써야 하는데 머리에서 뜻은 맴돌지만 낱말이 생각이 안나 어물거리다가 흐리마리 마치고 만다.
나는 소설을 쓰려고 다년간 낱말공부를 했었다. 순우리말이면서도 세태가 변하면서 점점 사어가 돼 버리는 낱말들이다. 우선 어휘력이 있어야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막힘없이 쓸 수 있는 것이다. 고 이문구 선생이 이런 나의 귀감이었다. 그의 소설엔 아름다운 우리말이 적재적소에 들어 있다. 요설문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홍명희의 <임꺽정>은 우리말의 보고라 할 만하다.
이런 소설과 더불어 꾸준히 공부를 했더니 어느 정도 글쓰기에 필요할 만큼의 어휘력은 습득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국어사전을 들춰 보면 모르는 말이 태반이다.
나더러 TV 프로그램 <우리말 겨루기>에 나가면 1등은 따 놓은 당상이겠다고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근데 아니올시다. 그거야 순간적인 순발력으로 답을 말해야 하는 성질의 것이니 일상대화 때도 낱말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나는 그런 퀴즈는 젬병이다. 물론 거개가 맞힐 수 있는 낱말들이지만 말이다.
어느 인터넷 기사를 보니 이런 증상을 <블로킹현상>이라 한다. 그런데 나는 대화할 때만 이 블로킹현상이 있는 게 아니다. 짧은 글을 쓰면서도 적당한 낱말이 생각이 안나 머리를 쥐어뜯을 때가 다반사다. 그 낱말 하나 때문에 글은 끊어지고 많은 시간을 들여 찾고 기억해 내고 보면 허망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러다가 치매가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우도 들고.
그래도 글은 쓰다가 막히면 그대로 두었다가 낱말을 찾고 기억하여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성해 나가는 장점이 있어 좋다. 말로 하는 대화는 정말이지 무섭다. 논리정연하게 토론을 잘 하는 소위 논객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그래서 나는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글은 이것 말고도 틀리면 다시 고칠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앞뒤가 안 맞는 경우에도 앞부분을 고치거나 뒷부분을 고치면 된다. 최종적으로 다시 점검하여 수정하고 첨가하거나 삭제해가며 원래 의도했던 글에 근접할 수가 있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통째로 없앨 수도 있다. 예전 문학가들이 글을 쓸 때면 산더미처럼 쌓이던 파지들은 얼마나 거룩하고 아름다운 고뇌인가!
말은 한번 나오면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나는 말 잘하는 것보다 글 잘 쓰는 것이 윗길이라 자위한다. 그렇다고 특출하게 글 쓰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