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운전기사 이야깁니다. 몹시도 아픈 이 시대의 자화상입니다. 이 버스 기사는 너무나 젊은 사람이고 더구나 여자라는 사실이 더 애절하고 무겁습니다. 중국입니다.
아마 중국엔 여자 버스기사가 더러더러 있나 봅니다.
그날도 버스는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저만치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손을 들어 세웁니다. 남자 셋이 올라타고 다시 버스는 출발했지요. 그런데 이 새로 탄 세 남자가 돌변하여 버스 안은 일순간 공포에 싸였습니다.
중국 여행길에는 곳곳에 산적이나 그 부류의 노상강도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약탈을 하고 있다고 한국 여행자들은 특히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거니와 아마 그런 부류의 양아치들이겠지요.
놈들은 험악한 눈을 희번득이며 주머니에서 단도를 꺼내 보이며 승객들을 얼어붙게 위협하고는 돈을 갈취합니다. 여자 기사는 두렵지만 냉정을 잃지 않고 본업에 충실하여 차를 운전하고 갑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버스를 몰다 보면 그런 깡패들을 만나 곤욕을 치르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요.
돈을 갈취한 양아치들이 운전석으로 가서는 그녀를 희롱합니다. 그대로 달리기엔 위험하여 속도를 줄여 버스를 세웠습니다. 연약한 여자의 몸을 사내놈들이 음충맞게 희롱합니다. 기사는 비로소 위험을 감지하고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세 놈에게 둘러싸여 어쩌지 못하고 속수무책입니다.
버스에는 승객이 여럿이었지만 누구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저 창밖을 보는 척만 하고 기사는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보다 못한 어느 중년남자가 일어나서 잔뜩 겁먹은 얼굴로 놈들에게 다가가서는 조용하게 제지했습니다. 그러니까 놈들이 중년남자를 가만히 두겠습니까. 험악하게 얼굴을 구기면서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머뭇거렸다면 주먹세례를 받았겠지만 겁먹은 중년남자가 얼른 제자리로 돌아와 맞지는 않았습니다. 남자는 체격이 왜소해 실상 그들과 대적하기엔 어림도 없는 외모의 선량하게 생긴 사람입니다. 승객들 모두가 외면한 것을 그 정도나마 용기를 내보인 사실이 가상할 지경이었지요.
놈들이 기사를 끌어냅니다. 버스는 시동이 걸린 채 서 있고 승객들은 움직이지 않고 창밖의 광경만 불구경하듯 내다봅니다. 그것은 공포에 질린 여성 하나가 흉폭한 사내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녀는 풀숲에 내동댕이쳐집니다. 처음의 비명도 이젠 잦아집니다. 그때 또다시 아까의 중년남자가 일어나 버스 밖으로 나갑니다. 제법 호기 있게 그들이 사라진 풀숲으로 다가가지만 곧이어 무지막지한 매질을 당합니다. 얼굴과 목에 피가 낭자한 채 쫓겨 오는 광경을 버스 안의 승객들이 구경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기사와 양아치들이 버스로 돌아옵니다. 그녀는 너무나도 불미스런 몰골이었습니다. 승객들은 이제 떠나게 돼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표정을 짓습니다. 그녀가 힘겹게 운전석에 앉습니다. 과연 그 지경으로 운전을 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녀가 승객들을 돌아봅니다. 초점을 잃은 시선으로 아까의 중년남자를 봅니다. 그리고 그 사람더러 내리라 했습니다. 중년남자는 황당한 기색으로 싫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녀를 도와주려 한 건 자기 하나 뿐인데 어찌 자기더러 내리라고 하느냐고. 기사는 그래도 막무가내로 내리라고 했습니다. 아저씨가 안 내리면 버스 절대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승객들이 용기를 내어 중년남자를 몰아세웠습니다. 얼른 내리라고. 바쁜데 당신 때문에 못 가고 있다고. 중년남자의 그 선량한 얼굴과 왜소한 체격이 그 사람들에게 그런 용기를 준 것 같습니다. 급기야 얼굴과 목이 피투성이인 그 남자에게 달려들어 가방을 뺏어서는 창밖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이러한 우여곡절 후에 중년남자만 홀로 길에 버려지고 기사와 양아치들과 승객들과 버스는 그 곳을 떠났습니다.
공포의 장소를 떠난 기사는 차를 몰아 강물이 흐르는 곳에 이르러서는 그대로 가드레일을 뚫고 돌진하여 강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가녀린 젊은 여성도, 흉폭한 양아치 놈들도, 외면했던 승객들도,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본 버스와 함께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이것은 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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