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봄밤

설리숲 2006. 6. 5. 23:09

  봄이다. 봄밤이다. 그를 만나러 진주로 가는 밤길.

  지리산 검은 능선 위로 큰달이 떴다.

 

 - 어, 저거 횃대다. 횃대 얼굴이다

 

  봄의 한가운데다. 저녁에 전화 오다.

 

 - 행님 보고싶어 지금 진주 왔지롱~ 지금 나올 수 있나?

 

  날 보러 부러 오지 않은 줄은 알지만 그럼, 나가고 말고.

  이방에서 맞는 뜻밖의 해후, 요런 게 있어서 우리 생활은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몸이 아파 병원에 들락거리더니 병색이 전혀 없다. 그래서 무지 기분 좋고 반갑고 고맙고... 그래서 대로에서 그만 포옹하고 말았네.

 

 명일 광주에서 결혼식이 있다는, 그 혼주가 진주에 있어 왔다는....

 

 - 너거들 불륜 아이가?

 

 요건 카푸스님 전화고,

 

 - 좋은 사람이 앞에 있으니 전화소리가 들릴 리가 있나

 

 요건 롯데리아 음악소리가 시끄러워 벨소리를 듣지 못했던 탄벡님의 짓궂은 말씀.

 

 불륜, 혹은 로맨스.

 기든 아니든 무슨 대수람. 사람이 사람 만나는 거야 일상이지. 세상의 반은 남자고 반은 여자라니, 열을 만나면 그 중의 다섯은 당연 여잘테니.  

 

 반가운 해후는 고작 커피 한잔의 시간으로 회포를 풀었지만 시간이야 머 별 거 아니다. 날마다 만나서 수다를 떨어도 어정쩡하기만하고 전혀 가까워지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년만에 잠시 얼굴 한번 보고 웃어도 정이 하나 가득 들어앉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잠시 얼굴을 보고 웃고 다시 지리산 계곡으로 돌아오다.

 보름밤이다.

 장엄한 지리산 능선 위로 뜬 큰달.

 저거 횃대다, 횃대 얼굴이다.

 오늘 본 그 얼굴처럼, 저 보름달처럼 늘 즐겁고 환했으면......

 

 지발 아프지 마시오.

 

 정선으로 돌아가는 날 다시 한번 보지요.

 

 

  2005.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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