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그 섬에 가고 싶지 않다

설리숲 2009. 10. 15. 21:30

 

 

 정서와 풍토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사람이 사는 데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말년에 해남에서 살아보는 걸 신중히 검토했었다. 지난 겨울 한달 정도 그곳에서 지냈었다. 이국적인 풍취는 여행지로 다녀오기엔 그만이어도 내가 오래 살만한 곳은 아닌 걸 느꼈다. 불만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 없이 그냥 나와는 풍토가 안 맞는 것 같았다.

 그 전 겨울 두 달 가까인 살았던 통영에선 혹독한 질병을 앓았다.

험준한 산골 태생인 내게 생래적으로 산골의 기가 내재돼 있다고 짐작한다. 짐작일 뿐이지 그렇다는 증거도 없다.

 

 

 제주도에 갔을 때도 여느 해안가를 갔을 때도 피부에 맞는 바람은 그리 탐탁지 않다. 바닷가라 바람은 많고 또 시원하게 불지마는 청량한 맛이 없고 그저 흐리터분하다. 역시 몸에 익은 산악지방으로 가야 그 상쾌한 바람의 맛을 느끼는 것이다.

 

 

 어쩐지 섬이나 바다는 나하고 궁합이 안 맞는 모양이다. 보길도를 가려고 그동안 세 번이나 완도항엘 갔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기상악화로 배가 출항을 못했다. 아 그 좋던 날씨가 왜 나 배 타러 가면 그 모양이냐 말이지.

 가을이다. 참말 돌아다니기 좋은 나날들이다. 이 좋은 계절에 거문도를 가려고 밤을 도와 녹동엘 갔다. 월요일인 그날은 휴항하는 날이란다. 또 징조가 안 좋다. 모르고 날을 잘못 잡은 내 불찰이어도 그것 한가지로 섬과의 원진살을 거론하기 딱 좋다. 아니나 다를까 하룻밤을 묵고 다시 녹동항으로 나가니 기상악화로 출항을 못 한다 한다. 그럼 그렇지 나는 섬 하고는 안 맞는구나. 멀리 왔으니 하루 더 기다려 기어코 거문도를 들어가고 싶었으나 한편 섬이 날 밀어내는 거면 굳이 꾸역꾸역 들어갈 것도 없다.

 인연이 있으면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하고 거문도가 아닌 고흥반도의 이국적인 풍광을 감상하며 모처럼의 바닷가 나들이를 만끽했다.

그러면서도 자꾸 드는 생각은 이놈의 날씨가 이리 화창하고 청명한데 거문도 가는 뱃길은 무슨 조화로 트레바리를 놓느냔 말이지.

 

 

                                                            녹동항 전경

 

 

 

 모르고 갔는데 한때 전 세계의 뉴스거리가 되었었던 나로도가 바로 그 앞에 있었다. 아하, 나로도가 고흥에 있었구나. 바로 저 건너에는 당신들의 천국 소록도가 손에 잡힐 듯이 건너다보였다. 절해고도 고통의 섬인 그곳에 이젠 다리가 놓여 그 누구도 섬과 뭍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게 되었다.

 전망대로 오르는 비탈길에 마주친 일그러진 얼굴의 노인 하나. 아하, 말로만 듣던 한센 환자였다. 그렇게 아무 거리낌 없이 문둥이와 문둥이 아닌 사람이 스쳐지나가는 세태가 됐음이 어쩐지 신기했다.

 그렇지,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우리는 이유도 없고 의미도 없는 선을 긋고만 살 건가.

 

 

 남해바다 파란 물 위에 노란 햇살은 쏟아져 내려 가을은 자꾸만 깊어 가고 있었다.

 

 

  올 봄에 소록도와 녹동간의 다리가 개통되었다. 이제 더이상 절해고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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