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를 뭐라 부를까. 여행가? 혹은 자원봉사자?
아무튼 그는 유명하다. 지구 몇 바퀴를 돌았다는 이력이 그를 유명하게 했고 이제는 봉사자로 국경을 넘나들면서 존경까지 받고 있다. 아이들에게 모델로 제시되기도 하는, 이른바 신지식인 중의 하나다. 나 역시 자유롭고 광활한 영혼을 가진 그를 선망하고 존경한다.
그가 출연한 TV프로를 보던 중 큰조카가 내게 넌지시 말한다.
“저 여자가 존경받을 만한 건 맞지만 난 어쩐지 쪼끔은 질투가 나기도 해요. 모든 면에서 삼촌과 한비야는 닮아 있어요. 아직까지 결혼 안하고 독신으로 있는 것 하며, 자유로운 사고방식이나 또 거리낄 것 없이 아무데고 떠나고 싶어 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
단지 저 여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삼촌은 그러지 못하다는 거지요. 삼촌도 저 여자만큼만 돈이 있었다면 아마 지구 몇 바퀴 도는 건 문제도 아니었겠죠. 저 여자가 쓴 책으로 유명해졌는데 삼촌은 글도 더 잘 쓰니 모르긴 몰라도 더 많이 돈을 벌었을 테고 더 유명해져 있을지도 몰라요.
부익부빈익빈, 결국 돈이 사람을 풍요롭게 해주는 거 아닐까요.“
큰조카 말에 수긍이 간다. 갑부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벌어오는 직업의 아버지를 가진 한비야는 분명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외국여행을 떠날 수 있는 안팎노자가 그닥 달리진 않았으리라.
수없이 많은 국경을 넘나들면서 유명해졌고 이젠 자비를 들이지 않고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가 있다. 한비야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도 그가 글을 쓰면 고스란히 돈이 되어 들어오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반면 나는 욕망은 있으나 금전이 허락하지 못하니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는, 그런 차이가 있다.
큰조카 말이 틀리진 않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돈이 있다고 다 그녀처럼 되지는 않는다. 자유롭고 진취적인 영혼을 갖는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집안이 넉넉하면 주류의 세계에서 안주하려 하지 국경을 넘나들며 새로운 세계를 담으려는 생각을 감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스스로가 가난하다고 생각하기에, 금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었고 그에 따라 몸도 마음도 주류의 세계로부터 초탈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내 부모가 부자였다면 지금의 나와는 생판 다른 인간형이 돼 있었을 것이다. 장담하건대 정말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한비야가 더 존경스러운 것이다. 나는 내 영혼과 육체가 공히 자유롭다고 스스로 단언한다. 그건 내가 가난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 그녀는 넉넉했음에도 그것을 얻었고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그 누림을 다른 이에게 나눠주려고 그녀는 이 시간에도 자원봉사자로서 지구촌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넉넉했으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장담하건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