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숲에서

선녀를 기다리는 나무꾼

설리숲 2010. 9. 16. 23:12

 

 우리나라 전래동화 가운데 숲이 배경이 된 동화가 제법 된다. 원래 예부터 사람들은 숲과 더불어 살아 왔으니 당연 이야기도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호랑이나 여우 토끼가 빈번히 등장하는 것도 그런 연유다.

 숲으로부터 나온 이런 전래동화 중에서도 으뜸은 <금도끼 은도끼>와 <선녀와 나무꾼>이 아닐까. 금도끼 은도끼는 짧은 이야기이니만치 그 교훈도 간단명료하다. 욕심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살라는 것.

 반면 선녀와 나무꾼은 그 길이만큼 스토리도 흥미진진하며 유장하다. 또한 그것에서 얻는 교훈 내지 철학도 다양하다.

 


 우선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엄을 본다. 사냥꾼에 쫓긴 사슴을 숨겨준다. 보통은 굴러들어온 그 놈을 옳거니 하면서 내가 취하게 마련이지만 주인공은 귀한 생명을 소중하게 보호한다.

 

 은인에 대한 보은을 본다. 사슴이 그에 대한 보은으로 총각인 나무꾼에게 색시를 얻을 비책을 알려준다.

 

 과욕을 부리지 않는 소박함. 나무꾼은 왜 선녀가 그리 많은데도 날개옷을 하나만 훔쳤을까. 나를 비롯한 보편적인 사내들의 욕심은 되도록 더 많은 선녀를 갖고 싶어 날개옷을 여럿 혹은 죄다 가져갔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성인소설이었으면 분명 그런 스토리도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동화에서 그런 욕심을 그리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지 싶다. 나무를 내다 팔아 생계를 꾸려야 하는 가난한 총각이니 여러 여자를 취할 능력이 또한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은 욕심 없이 한 여자만 취하고 만다.


 사랑 없는 결혼은 결국 불행을 가져온다는 암시를 본다. 사슴은 아이 셋을 낳기 전에는 절대로 비밀을 발설하지 말도록 신신당부한다. 언제든 선녀가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모성본능이 있다. 애정 없는 혼인이지만 아이가 셋이면 결국 천상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하리라는 신념. 양쪽에 아이를 끼고, 한 아이를 남겨 놓고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어머니의 모성애. 얼마 전 천안함침몰사고로 순직한 병사들의 유족들에게 보상금 위로금 등이 지급되었다. 갓난쟁이 때 아이를 버려두고 간 비정의 엄마 아빠가 그제 나타나 돈을 받아냈다고 한다. 버린 자식, 그 자식이 죽자 그 목숨값을 받아 챙기는 추악함을 접했다.


 인간의 가벼움을 본다. 아이 셋을 낳기 전엔 절대로 입을 열지 말라던 사슴의 당부를 잊고 나무꾼은 입이 간지러워 진득이 기다리지 못한다. 그 경박함으로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돼 버린다.


 어른들의 금과옥조 같은 가르침. 살다 보면 없던 정도 생기느니라. 날개옷을 입고 두 아이를 양 옆에 데리고 천상으로 되돌아간 선녀는 그러나 두고 온 남편이 사무치게 그립다. 비록 애정 없는 결혼이었으나 여러 해를 한 집에서 오순도순 복대기며 살았고(진정으로 행복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살을 부비고 아이도 낳고 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새 하나하나 정이 쌓여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런 게 사랑이니라. 흠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리하여 결국은 천상의 화려한 생활을 버리고 인간세의 허름한 오두막을 선택한다는 것. 여기서 환경이나 배경보다는 오로지 진실한 사랑만이 최고 덕목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어느 때 어느 누구의 입으로부터 시작됐는지는 모르지만 이 전래동화에는 또한 사람 사는 인간세에 대한 자부심이 들어있다. 인간들의 생각으론 모든 게 풍부하고 화려하고 행복할 것 같은 천상이지만 그들 또한 자신의 세계가 아닌 저 아래 지상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시설도 좋고 향도 좋은 고급스런 목욕시설을 갖추고 향유할 테지만 선녀들은 지상이 궁금해 기어이 목욕을 하러 숲의 연못으로 내려온다. 그리고는 정기적으로 그 즐거움을 누리러 다녀가곤 한다. 아무리 인간들이 선망하는 그들이지만 그들 역시 지상을 선망하고 있다. 그곳의 목욕탕보다도 숲의 연못이 더 좋다는 것을 원작자는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다.

 

 나는 늘 궁금하다. 선녀는 어떤 존재들인가. 아름다운 여자의 상징으로 뭇 사내들의 로망인 그녀들의 정체가 궁금하다. 내 짐작으론 천상에서 그저 그런 시녀 같은 존재인 듯한데 말하자면 그녀들의 신분은 낮은 계층의 여자들이 아닌가 한다.

 또 하나 궁금한 건, 날개옷을 잃어버린 선녀는 어떻게 나무꾼의 오두막집으로 갔을까. 옷을 감췄으니 당연 완전 알몸이었을 텐데 그 모양새로 걸어갔을 게 뻔하다. 그 정경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웃긴가. 혹시 아는가. 그 여체를 보고 나무꾼이 충동을 자제 못하고 중간에서 일을 저질렀을지도.

 선녀들이지만 의리는 없었나보다. 불쌍한 동료를 혼자 내버려두고 저들끼리만 가고 말다니. 게다가 옥황상제는 그 보고를 받았을 텐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당장 파렴치한 나무꾼 놈을 처치하거나 사람을 시켜 날개옷을 보내줬어야 되잖나 말이다. 결과적으로 선녀가 아이 둘을 낳고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작정한 게 된다 헐.

 

 

 

 언제나 꿈을 꾼다. 내게도 어느 날 선녀 같은 존재가 불쑥 찾아오는 믿지 못할 환상 같은 것. 그 환상은 꼭 여자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늘 바라고 있는 그 어떤 것들 전부 포함된다. 그런 환상이라도 없으면 어찌 이 각박한 세상에 던져진 고통을 감내하며 산단 말인가.

 


'서늘한 숲 > 숲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앵두낙엽버섯  (0) 2010.11.13
숲속 오두막집  (0) 2010.09.24
생사의 기로에 있는 유혈목이  (0) 2010.09.15
멧돼지 똥  (0) 2010.09.10
외꽃버섯  (0) 2010.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