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여 예절이 까다롭다고 하지만 실은 서양문화와 예절이 훨씬 까다롭다.
가령 음악회를 갈 때는 정장을 입어야 하고 아무 때나 박수 치는 게 아니라거나, 테니스 경기장에서는 함성을 지르며 응원하지 않는 것 등등.
무엇보다도 외식문화가 참 거시기하다는 소리를 어릴 때부터 들었던 터. 포크는 왼손 칼은 오른손으로 들고 먹어야 한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긴 했어도 양놈들 참 무식한 놈들이구나 했다. 왼손잡이면 몰라도 포크를 오른손으로 들고 찍어 먹어야지 무신 그런 얼치기 법도가 있는감.
나는 스무 살도 훨씬 지난 후 난생 처음 레스토랑엘 가게 되었다. 포크를 오른손에 쥐는 것 정도는 알지만 당연 쫄기 마련이다. 어리벙벙하면서 망신당하지나 않을까.
쫄래쫄래 일행들을 따라 들어간 레스토랑. 고급진 클래식 음악이 흐른다. 에이, 난 김범룡 노래가 더 좋은데. 흐르는 곡은 하이든의 현악4중주, 그 중 <황제>다. 그래, 오늘 같은 날은 황제가 되자.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웨이러가 온다.
웨이러 :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한때 최불암 시리즈가 유행했을 때 이런 유머도 있었다.
최불암이 레스토랑엘 갔는데 웨이러가 물었다. 무엇을 드릴까요?
친구들은 한마디씩 했다.
난 돈까스...
난 비후까스...
최불암은 옳거니 하면서
난 부탄까스...)
그러나 우린 애초 비후스텍을 먹기로 했었기에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다들 비후스텍을 주문했다.
웨이러 : 고기는 어떻게 드릴까요?
(어떻게 드리다니? 그게 뭔데?)
한 놈이 미디움으로 주세요, 한다. 그러자 다른 놈도 미디움, 또다른 놈도 미디움, 그러니 알지 못하는 나 역시 미디움으로 주문했다.
(이 대목에서 최불암은 난 라지로 주세요 했다던가)
사이드 메뉴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
(비후스텍 시켰는데 또 무슨 메뉴?)
고구마 주세요.
그러니 너도 나도 다 고구마로 오케이.
웨이러 : 스프는 크림스프로 드릴까요 야채스프로 드릴까요?
한마디씩 주문하고 났는데도 웨이러 아직도 안가고 서서 묻는다.
웨이러 : 디저트는 커피로 드릴까요 음료수로 드릴까요?
(아 씨~ 제발 아무거나 좀 갖다주라 응?)
뭐가 선택하는 게 그리 많은지. 묻고 대답하다 굶어 디지겠다.
나는 또 거기서 음료수는 콜라로 드릴까요 사이다로 드릴까요? 콜라는 코카로 드릴까요 펩시로 드릴까요? 더 물어보는 것 아닌가 조바심 냈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에구 서양놈들은 어찌 이래 사누, 불편하게스리.
하이튼 처음 접해 본 레스토랑 문화는 번거로웠다는 기억.
선택의 미학
레스토랑에서처럼 우리 남자들은 평생을 대답하기 힘든, 원하지 않는 선택을 강요받고 산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컸을 때는,
엄마가 좋아 색시가 좋아?
이 질문에서 아빠가 아닌 엄마가 거론되는 걸로 첫 번째 질문의 승자는 엄마임이 확실해졌다.
결혼하고 TV를 보면서 마누라가 묻는다,
김태희가 예뻐 내가 예뻐?
이건 세상에서 가장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지만 쉽게 대답을 못하기는 매 한가지다.
그러더니 어느 때 꼬맹이 딸년이 또 선택을 강요한다.
아빠, 내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이구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