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지하철 사람들

설리숲 2018. 3. 18. 21:07


 지하철 5호선, .

 남부터미널로 가서 심야버스를 탈 요량이었어.

 붐비지 않은 늦은 시간이라 빈 자리가 많아 승객들은 다 앉아 있었어. 한 아가씨만 서 있었는데 얼굴도 몸매도 빼어난 미인인데다가 옷차림도 남의 사선을 빼앗을 만하게 관능적(?)인 아가씨였어. 촌놈 눈엔 서울아가씨들은 다 예쁘지만 그 아가씨는 그 중에서도 갑이었지.

 

 아저씨 주책이라고 흉잡힐 짓인 걸 알지만 하이튼 시선을 붙잡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어.

 침을 흘릴 듯 감상하고 있는데 내 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아저씨도 저 여자가 보이는군요

 돌아보니 아줌마 하나가 내게로 가까이 다가앉아 있어. 내 옆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언제 앉았는지 모르게. 이상한 아줌마라고 무질러 버리려고 했는데 또 속삭이는 거야.

 

 ‘살고 싶으면 이제 그만 쳐다보세요. 저거 사람 아냐. 지금 아저씨랑 내 눈에만 보이는 거야

 황당하지만 어쩐지 오싹해졌어.

 

 ‘봐요. 저렇게 짧은 미니스커트에 노출도 심한데 아무도 안 쳐다보잖아

 설마 그럴 리가, 하면서도 늦은 밤시간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까, 더구나 아줌마의 나지막한 속삭임이 부정을 못하게 감겨들어서 소름이 돋는 거야.

 

 ‘얼마 전에 선로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예요. 왜 지하철에서 저렇게 서성이는지 알아요? 빙의할 사람을 찾고 있는 거예요. 절대 눈을 마주치면 안돼.’

 

 나는 혼이 빠져 나가는 것 같았어. 절대 쳐다보지 말자.

 그런데 이 아줌마는 누구지.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 눈을 돌렸다가 나를 보고 있던 그 아가씨와 그만 눈이 마주쳤어. ! 순간적으로 눈을 깔았으되 멘붕이 왔어. 몸이 오싹하며 정신이 어수선했어.

 

- 다음 정차역은 광나루, 광나루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나는 여차하면 문이 열리는 즉시 튀어나갈 생각으로 도사리고 있었어. 그러나 운이 좋았는지 아가씨의 시선은 이내 거두어졌고 곧이어 내리려고 출입문 앞에 서 있는 다른 남자를 보고 있었어.

 

 ‘저 남자를 골랐나 보네

 아줌마가 소근거렸어.

 

 ‘저 남자를 따라 내릴 거예요

 짜장 그럴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못 믿겠으면 따라 내리든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성은 살아서 그러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따라 내리고 싶어지는 거야.

 자리에서 일어났어. 슬쩍 옆눈으로 보니 아줌마는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태연한 얼굴로 앞만 보고 있어.

 “아줌마는 누구세요?”

 출입문이 열리면서 내가 아줌마한테 그렇게 물었는데 태연하던 표정이 순간 변하면서 씩 웃는 거야. 으아, 오싹한 느낌!. 튕기듯 전철 문 밖으로 나와 버렸어.

 전철이 출발하면서 보니 반대편 유리창에 비친 아줌마의 얼굴이 보이는데 나를 보고 웃고 있었어.

 

 귀신 아가씨와 젊은 남자가 앞에 걸어가고 있었어.

 위험에 빠진 남자를 구해야 되는데 이야기를 해줘야 되나? 나는 무서우면서도 이상하게 거기서 벗어나려는 의지력이 약해져 있었던 거야. 

 

 “같이가 오빠~”

아가씨가 남자를 따라가며 그렇게 말했어.

따라오지마... 짜증나게 괜히 따라와서 쪽팔리게

 짜증난 듯 투덜대는 남자의 말투는 의외였어.

 

 “너 또 처음부터 끝에까지 칸마다 돌아다니면서 몸매 자랑했지? 내가 너땜에 쪽팔려 죽겠다. 너 그렇게 옷 입고 돌아다니는거 아빠한테 걸리면 죽음이야

 

 허탈한 멘붕이 밀려왔습니다.

 나 왜 내린 거지?

 그 아줌마 누구세요.

 

 

 마음을 가다듬고 뚜벅뚜벅 계단을 올라 개찰구로 가려는데 누가 등을 건드리네. 돌아보니 나보다는 열 살 정도 젊어 보이는 남자야. 그가 웃었어. 이건 또 뭐지?

 

 “어떤 미친년이 아저씨가 귀신이라고 하길래 따라내렸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지하가 다 울릴 정도로 크게 웃어댔어.

 

 

 그러고 보니 이상한 아줌마에 속아서 잘못 내린 건 아니었어. 남부터미널을 가려면 광나루에서 환승해야 하니 제대로 내린 거였지.

 미친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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